며칠 전, 반가운 두 분을 만났다. 취재원으로 처음 만나 20년 가까이 인연을 쌓아온 분들이다. 추앙까지는 아니지만, 그분들의 곧은 정신과 소박한 삶의 태도, 소수자를 향한 따듯한 마음을 존경한다. 이런 시대에 존경할 어른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한 분은 대법관, 한 분은 헌법재판관으로 있으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에게 부당한 판례를 바꾸려 부단히 애썼다. 이분들의 노력 덕분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멈출 수 있었고 대체복무제 입법 논의의 길이 다시 열렸다. 퇴임 뒤에는 돈(월급) 많이 버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두 분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을 연달아 맡아서 돈(후원금) 많이 버는 일에만 애썼다. 젊은 공익변호사들이 돈 걱정 없이 사회의 그늘진 곳을 살피는 공익소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냈던 소수의견을 포함한 헌재 결정에 대해 헌법학자들의 평석을 담은 논문집 봉정식이 이날 열렸다. 퇴임 뒤에 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전수안 전 대법관을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드리는 길에, 문득 그 옛날 마음에 담아둔, 따사롭지만 ‘뼈 있는’ 퇴임사가 떠올랐다. 2012년 7월 “경비관리대의 실무관과 청원경찰, 새벽 어스름에 사무실과 잔디밭을 살펴주던 파견근로자 여러분”을 일일이 호명한 전 대법관의 퇴임사는 이렇게 끝맺는다. “끝으로, 여성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중략)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돼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이 지났다. 이번호에선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후보자로 지명한 장차관급 이상 64명과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50명 등 모두 114명을 심층분석했다. 이완·손고운 기자가 114명의 정보를 모아 분석하고, 정치권 관계자 등 18명의 이야기를 들어 ‘윤석열의 인사 코드’를 읽어냈다. 예상했듯이 검찰, 모피아(재정·금융 관료), MB(이명박 정부), 서울대, 지인(가까운 사람), 남성 등의 열쇳말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114명 가운데 여성은 8.8%(10명)로, 문재인 정부 1기 내각(15%)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5월9일 발표한 차관 20명의 얼굴을 바둑판처럼 늘어놓은 사진을 보고는, 어찌 여성은 한 명도 없을까 아연했던 마음 그대로였다. ‘언젠가’ 여성 장차관만으로 내각이 구성되는 날도 있을까. 김양진 기자는 “서초동 검찰총장실을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검찰 출신 인사들의 발탁 배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뒤 첫 검찰 인사에 얽힌 내밀한 속이야기를 전한다. ‘쓰고 또 쓰는’ 검사 윤석열의 인사 스타일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검찰 직할체제 구축’보다 더 우려스러운 일은 따로 있다. 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대법관 1명을 뺀 13명(대법원장 포함), 헌법재판관 9명 전원(헌재소장 포함)이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대법원장과 국회가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나눠 갖고 있어, 장차관처럼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을 강행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과거 관례상 검찰 출신에게 한 자리씩 챙겨주던 대법관, 헌법재판관 자리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끝으로, 기사에는 담지 못했지만 윤석열 정부 첫 검찰 인사의 여파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모욕적인” 인사 통보에 사직서를 낸 서지현 검사(법무부 전 디지털성범죄 TF 팀장)와, 대구지검으로 좌천돼 “시대의 역류를 마주하더라도” 다시 “씩씩하게 나아가겠노라고 다짐”한 임은정 검사(법무부 전 감찰담당관) 두 분에게도 전하고 싶다. 언젠가 여러분 같은 이들이 전체 검찰의 다수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공모제가 열립니다. 기자를 꿈꾸는 예비언론인, 생생한 취재가 가능한 르포작가, 새로운 시선을 담은 일반 시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표지이야기’란 <한겨레21>이 그 주에 가장 전하고 싶은 중요한 이슈를 묶어낸 기획, 즉 <한겨레21>의 매주 얼굴이 되는 기획을 뜻합니다. 지난 29년간 1400개 넘는 표지이야기가 <한겨레21>의 얼굴로 독자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그 기획의 문을 독자 여러분께 활짝 엽니다.
<한겨레21>은 그동안 기자들이 최저시급 4천원을 받고 일하는 노동 현장에 한 달간 직접 뛰어든 ‘노동 OTL’,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 등을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연속 보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찾아가기 위한 심층 탐사보도 등을 통해 시대를 목격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고발하고 기록하는 시대입니다. 현장을 기록하는 것은 기자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기자들의 눈이 닿지 않는, 새로운 곳을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겨레21>이 여러분이 보내주신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겠습니다. 표지이야기에 도전하세요.
다음의 예시를 참고하되, 형식은 자유. 디지털 스토리텔링도 가능.
1. 현장 부문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일을 르포 형식으로 기록.
노동 OTL(제778호), 코로나19 병동 48시간 르포(제1345호), 공장이 떠난 도시(제1269호, 제1271호) 등 참고
2. 시대 진단 부문 시대의 모순과 문제를 어젠다(의제) 형식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기록.
페미사이드(제1393호), 소멸도시(제1378호 등), 투명인간의 죽음(제1384호), 도시 벽지학교(제1304호) 등 참고
3. 기획 부문 종합적으로 시대를 정리하는 기록.
쓰레기 TMI(제1374·1375호 통권호), 너머n―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제1340호) 등 참고
■ 주최 한겨레21
■ 제출사항 ① 지원자 이름, 연락처
② 한글문서 또는 워드문서로 작성한 기획의도 A4용지 1쪽 분량
③ 한글문서 또는 워드문서로 작성한 취재원고 A4용지 4쪽 분량(200자 원고지 30장 내외로 글쓴이의 기획 의도와 전개 방식을 드러내는 원고)
④ 지원자가 쓴 인터넷 글이나 원고 등 기획을 수행할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 3편(링크나 첨부파일 형태)
■ 보낼 곳 reportage21@hani.co.kr
*기획안 접수와 문의는 전자우편으로만 가능합니다.
*전자우편 제목에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공모제 지원작】이라고 밝혀주세요.
■ 접수 2022년 6월6일(월)~7월1일(금) 오후 5시
■ 선정작 발표 7월 중
■ 상금 총 3개 지원작에 각각 100만원 지급(2022년 하반기 <한겨레21> 표지이야기로 실린 뒤, 규정에 따라 상금 이외에 원고료 지급)
*선정 이후 기획안이나 취재 내용의 도작·표절이 밝혀지면 수상이 취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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