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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호
토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난 요안나는 1천㎞ 이상을 여행해 크리스토프를 만났습니다. 폴란드 대학에서 일하는 요안나와 독일 기업 고객관리자인 크리스토프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유럽의 난민 정책, 동성결혼 합법화 등에서 견해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은 종일 정치적 논쟁을 했습니다.
2019년 봄, 유럽의 33개국 1만7천 명이 다른 견해를 지닌 낯선 사람과 만나 정치 논쟁을 벌이는 ‘유럽 대화’라는 프로젝트에 신청했고 그중 수천 명은 요안나처럼 국경을 넘었습니다. 가족, 친구와도 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대화를 생판 모르는 남과 나누려고 그렇게 모였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유럽의 15개 언론사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독일 디지털 언론사 이었습니다.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은 ‘데이트 플랫폼’을 활용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논쟁하도록 돕는 ‘독일 대화’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2015년과 2016년에 100만 명 넘는 난민이 입국하면서 독일 이민정책을 두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던 거죠.
방식은 간단합니다. 구글 온라인 설문조사를 활용해 “독일이 너무 많은 난민을 수용하나요?” “동성결혼을 허용해야 하나요?” 등 몇 가지를 질문하고, 참여자는 ‘예’ 또는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습니다. “당신과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진 이웃을 만나고 싶은가요?” 하루 만에 1천 명이 ‘예’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1만2천 명이 ‘낯선 만남’을 신청했지요.
2017년 6월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전직 경찰관과 성소수자 엔지니어가, 우익 정당 대변인과 녹색당 활동가가, 서로 의견이 다른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만났습니다. 이들은 몇 시간씩 논쟁을 펼쳤고 관찰자나 녹음, 기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뒤 “정말 멋진 논쟁이었다” “매 순간이 즐거웠다”는 전자우편이 수천 통 쏟아졌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여름, 11개 독일 언론사가 연합해 다시 진행됐고 이번에는 2만8천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그중에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포함됐답니다. 참여자 설문조사를 해보니 90%가 대화를 즐겼으며, 3분의 2가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60%가 의견이 모아졌다고 했고,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헨 베그너 편집장의 2019년 9월 테드(TED) 강연(‘모르는 사람과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하게 했더니 벌어진 일’)을 다시 찾아본 것은 한반도의 남쪽이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갈라진 4·15 총선 결과 지도를 받아들고서입니다.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제의 착시효과로 지역 구도가 부활한 것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 절반으로 쪼개져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갈라짐을 뒤섞을 수 있을까, 이견을 좁힐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대화’ 프로젝트를 떠올렸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는 간단한 방법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과 일대일로 토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내가 배우고, 사회가 변합니다. 오늘 술집에서, 헬스장에서, 세미나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정치 이야기를 하십시오.”(요헨 베그너 편집장)
정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였더라, 그것도 나랑 의견이 다른 낯선 사람과. 기억의 끝이 가물가물합니다. 바꾸기를 꿈꾸지만, 바꾸는 데는 게으른 오늘을 또 마주합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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