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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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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소중 마스크

등록 2020-02-29 22:52 수정 2020-05-03 04:29

눈팅만 하는 단체대화방에 어제 톡이 하나 떴다. “친구들~ 3월28일 정기모임은 코로나19 상황을 다음주까지 지켜보고 날짜 연기 여부를 상의해봅시다~.” “이 상황이믄 연기해야 할 거 같아.” “그르게.” 댓글이 심심하게 이어지던 대화방은 세 아이 엄마의 톡으로 순간 시장통으로 변했다. “혹시 KF94 마스크 필요한 사람? 도매로 50개 포장 벌크.”

초등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2개 반이었던 시골학교 동급생은 졸업할 때 1개 반으로 줄었다. 수도권에 올라와 사는 고향 친구 열아홉은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안부를 묻고 1년에 몇 번씩 얼굴도 본다. 대화에 끼지도 모임에 나가지도 않지만, 마스크 판매 소식은 얄팍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마스크가 다 떨어졌다고 걱정하던 아내의 얼굴이 스쳤다.

경매하듯 주문이 빗발쳤다. “총 100개” “몇백 개도 가능하냐” “나 150개” “나 50개”. 개당 2200원에 주문받는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다. “사기는 아니것지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니께”. 한 친구가 미심쩍어하자 주문받는 친구가 다그친다. “토요일 일요일 1천 개 이상 거래된 거야.” 마스크 대란에 나타난 구원투수로 고향 친구들은 들떴다. 오늘 아침 주문받았던 친구한테서 톡이 날아왔다. “마스크 불발되었음. 단속 떠서 못 가져왔대ㅜㅜ.” 여기저기서 장탄식이 이어졌다. “어짜쓰까.” 정부의 매점매석 단속으로 기대는 그렇게 하룻밤 새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날 오후 경제부총리가 나와 긴급기자회견을 하는 방송에는 “마스크 140여 개 업체에서 1천만 개 생산” 자막이 떴다. 90%가 국내에 공급된단다.

우리가 지금 간절히 바라는 그 마스크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인류와 함께해온 유구한 전염병의 역사에 비하면. 흔히 삼겹 주름을 특징으로 하는 보건용 마스크(서지컬 혹은 덴탈 마스크라고도 함)는 1897년 파리에 처음 등장했다. 프랑스 외과의사인 폴 베르제가 수술하면서 사용했다. 환자의 입과 코에서 나오는 세균 등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염병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인 것은 더 나중의 일이다. 우연히도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이 기원이다. 1910년 만주에서 폐페스트가 창궐했다. 쥐가 병을 퍼뜨린다고 믿은 중국 정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신 유학파 의사인 우롄더에게 자문했다. 호흡기로 전염되는 사실을 안 그는 폐페스트로 숨진 환자 주검의 화장을 권고했다. 이때 전염 차단을 위해 마스크를 전파시켰다. 서지컬 마스크를 응용해 거즈로 솜뭉치를 감싼 조악한 마스크였다. 치명률이 높은 전염병으로 6만 명 사망에 그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그 덕이었다. 1918~19년 2500만 명 이상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 때 마스크는 전세계로 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크는 자연스레 대중화했다. 2000년대 초 사스(SARS)가 번졌을 때 홍콩인 90% 이상이 착용했다고 한다.

마스크가 그렇게 흔해진 시대가 됐다. 1월18일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아 약국에 들러 마스크를 샀다. 20개들이가 3천원이었다.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마스크는 누구나 갖고 싶으나 아무나 제때 원하는 만큼 살 수 없는 제품이 됐다. 마스크 하나 사기 위해 수백 미터 줄을 서야 한다. 모두가 필요한 때 누구는 갖고, 누구는 가질 수 없는 귀중품이 됐다. 잠시의 혼란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올해 국방비는 50조원이다. 눈에 보이는 적, 그것도 같은 인간을 향한 싸움을 준비하는 데 한 해 쓰는 돈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는가. 코로나19에 시민들이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아직 마스크와 손소독제 따위다. 이마저 걱정 없이 지급받을 순 없을까.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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