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노직 제공
야간자율학습 내내 담임선생님은 외롭다. 좀처럼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을 조용히 편다. 그러다 을 말아 쥐고 교실을 돈다. 어느 걸음도 아이들이 반길 리 없다. 이 친구다. 외로움은 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야자가 없는 날 집에 들어선다. 중1 된 아이가 묻는다. “왜 일찍 들어왔어?” 퉁명스럽다. 고3 담임을 맡고 몇 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자업자득이다. 아이는 야구를 좋아했다. 지난 시즌부터는 같이 가자고 해도 나서질 않는다. 연고팀이 부진한 탓인지, 아빠랑 가기 싫어서인지, 그 둘 다인지 알 길이 없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오랜만에 한가한 저녁 시간, 책상에 올려둔 을 다시 편다. 보육시설에서 나와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전정윤 기자, 글 참 잘 쓰시네’ 하고 앞을 보니 나온 지 1년 다 된 기사다. 그래도 좋네, 하며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보고 책상 위에 두고. 날짜는 크게 상관없다. 심층취재가 많으니까, 그래서 이 좋다.
상인고등학교 국어교사 권오직(45)씨가 설명한 과 함께하는 일상이다. 45년 내내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대구에서 대학을 다녀 선생님이 됐다. 다시 대구의 아이들을 가르친 지 20년째다.
아까 황급히 전화를 끊으신 이유라도. 종례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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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을 하셨는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조심하란 얘기를 했고, 신학기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 종업식이라는 얘기로 마무리했다.
학생들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있나. 아이들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 아르바이트 계약서라도 꼼꼼하게 읽고 해독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그래서 국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읽을 줄 알아야 억울한 일이 생겨도 억울한 줄 아니까. ‘강호에 병이 깊어’ 이런 ‘관동별곡’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아가는 얘기를 하면 확실히 눈이 반짝반짝한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바뀌어서 걱정이다.
어떻게 바뀌었나. 사회에 대해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극단화되는 느낌이다. 난민 문제만 해도 청년실업 때문인지 더불어 산다는 생각보다는 세금을 축낸다, 일자리를 뺏는다는 인식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정우성 배우가 나온 을 교실 뒤쪽에 갖다놓고, 기사 일부는 게시판에 붙여뒀다. 몇몇은 관심 갖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 바라는 점. 울산, 군산 르포처럼 간직하고 읽을 수 있는 기사 계속 부탁한다.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나중에라도 꼭 읽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1학년 5반! 1년 동안 아주 고마웠고, 부족한 담임 만나서 힘들었지? 사고 없이 지내줘서 고맙다. 항상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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