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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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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있는 그림

등록 2020-07-17 16:26 수정 2020-07-17 16:26
김효동씨(오른쪽)와 아내 박서운씨. 김효동 제공

김효동씨(오른쪽)와 아내 박서운씨. 김효동 제공

“한문으로 된 고전을 번역하거나 교정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차분하고 가지런한 목소리다. 수백 년 전 기록을 들추고 전하는 일, 신비롭다. 흥분해서 두서없이 묻는다. 질문 곳곳 묻어 있는 무식은 덤이다. 김효동(37) 독자는 당혹감을 감추고 침착하게 설명한다. 흥분을 끝내 품격으로 이끈다.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지금은 교정 하나, 번역 하나를 한다. <일성록>을 번역해 온 글을 보고 한문 원전과 비교해 틀린 부분을 짚고, 우리말 문장을 다듬는다. (일성록?) 정조 때부터 나온 우리나라 공식 정부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 또 홍경래의 난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한 글을 번역하는 일도 하고 있다.

고전 번역의 매력과 어려움이라면? 기록을 1차로 가공하는 것이 번역이고 2차 가공하는 것이 교정이다. 번역과 교정 모두 일종의 창작활동이다. 내가 이야기를 정제하는 주체가 돼 전한다는 게 재밌다. 게다가 그 글들이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록이니까.

고전번역원 같은 기관이나 한문 관련 과에서 한문 번역자가 많이 배출되는데 일감은 그만큼 많지 않다. 고용 불안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 지원이 많은데 코로나19로 고전 번역 쪽 예산도 준다고 한다. 나는 3년 동안 고전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2019년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다행히 아직 일감은 있다.

글을 정리하는 일을 하니, <한겨레21> 문장에 더 예민하겠다. 틀린 표현을 보면 바로잡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직업병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21>에는 어색한 표현이 거의 없다. 교열 기자가 따로 있어서 그런 것 같다. <21>은 가방에 쏙 들어가서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읽는다. 최근에 본 기사 가운데 탈북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겪은 일을 다룬 기사(제1318호)가 충격적이었다.

다른 독자와 나누고 싶은 고전 속 한마디를 청했다. 조금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수구가입시 물수구가입화’(人須求可入詩 物須求可入畵), 사람은 시로 쓸 만한 사람을 구해야 하고 물건은 그림으로 그릴 만한 물건을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청나라 때 문인 장조의 잠언집 <유몽영>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코로나19로 여행을 가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까운 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만나고 가까운 사람과 일상을 더 공유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만의 그림과 시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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