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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과 공정경쟁의 함수관계

등록 2019-11-29 11:00 수정 2020-05-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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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규정의 근본적 취지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것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게 노동조건의 최저한을 보장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엄과 자존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규정은 노동법을 준수하는 기업들이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경쟁 기업과 불공정한 경쟁에 시달리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를 가진다.” 2018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택배회사의 택배기사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판시한 내용입니다. 이 판결은 노동자가 자신이 노동자임을 입증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노무제공자가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하게 했습니다. 서비스업의 발전과 플랫폼노동의 등장으로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었죠. 이 판결이 법률로 굳어진 것이 2020년 1월부터 시행되는 AB-5 법률입니다. 이 법률에 따라 우버 기사와 같은 플랫폼노동자들은 노동자가 되고, 권리 역시 신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 언급한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한국과 달리 국외에서는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로 본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임금체불 규모가 일본의 10배가 넘는 것만 봐도, 한국에서는 ‘쟤네도 안 지키는데 우리도 지키지 말아야지’라는 인식이 더 클 것입니다. 플랫폼노동에 관한 ‘공정경쟁’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앱을 통해 임시직 일자리를 ‘자영업자’의 지위로 알선하는 플랫폼기업이 등장하자, 기존 임시직 일자리 알선 업체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플랫폼노동은 단순한 회색지대가 아니다. 암흑지대다. 플랫폼기업과 그 고객은 기본 노동법 규정조차 위반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처사다.” 플랫폼기업이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반발에 따라 플랫폼기업은 사업모델을 임시노동계약을 맺고 서비스 용역대금이 아닌 임금을 주는 체계로 바꿨다고 합니다. (프랑스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보도,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8월호에서 재인용)

한국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불리는 것은, 싸고 편한 것(또는 가성비가 좋은 것)들을 주로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싼’ 서비스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 이룩된 것이라면 평가를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플랫폼기업은 초기 시장 장악을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해 서비스 가격을 낮추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서비스를 이용하고 혁신을 평가하는 데 ‘노동’도 반드시 고려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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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서 플랫폼노동이라는 거창한 기사를 쓰면서 계속 머리에 남아 있던 고민도 그것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노동의 가치는 존중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기업은 그것이 ‘신산업’일지라도 규제 대상이 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앞으로도 독자님들과 이런 고민 계속 나누고 싶습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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