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라 그런지 어르신 같다고 해야 하나. 힘들 때 바르르 떨고 악 소리 내는 게 아니라 묵묵히 가만 보고 있는 그런 느낌 있죠? 그런 것 같아요, 군산이.”(김성훈 군산 살맛나는 민생희망연대 대표)
차를 얻어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길, 군산 토박이 김성훈 대표의 말을 듣습니다. 차창 밖으로 낡고 해진 건물들이 스칩니다. 과연 좀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낯선 땅에서 뭐라도 급히 길어내야 했습니다. 좀더 극적인 말로, 행동으로 공장이 떠난 도시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줘도 좋을 텐데. 첫 일주일을 군산에서 보내고 서울로 오는 길, 봄볕만큼 느릿하고 묵묵한 군산이 못내 야속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가득 찰 때면, 군산 곳곳을 1시간40분 정도 도는 군산 7번 버스를 타고 도시 구경을 했습니다(그 가운데 하루는 <한겨레21> 하어영 기자의 팬을 자처한 친절한 버스회사 직원의 소개로, 7번 버스 기사님 설명을 들어가며 군산을 둘러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버스에서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듣는데, “아, 그렇지” 싶은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민해야 한다.”
예민함, 예민함이라. 명료한 단어 대신 “거시기” 하고 말아버리는 표정 속에 담긴 더 많은 단어들, “당장 굶진 않는데…” 줄인 말 뒤에 숨긴 더 많은 말을, 예민하지 못해 놓쳐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삶의 전부라 할 만한 일과 사람들과 믿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을, 저는 군산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묵묵하다고 마음까지 고요할 리는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모습, 매일같이 투쟁과 충돌이 반복되는 극적인 순간만 ‘위기’라고 본다면 군산에서 위기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19년 경제위기는 군산에서, 그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는 버티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어정쩡한 상태로 점점 무기력해지는 도시가 자주 애처로웠습니다. 책과 논문을 뒤지고 전문가들과 통화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어 죄송했습니다.
군산에 머무는 6주 동안 거의 매주 일터에서, 술자리에서 만나며 전해 들은 한국지엠 실직 노동자 김성우(가명)씨의 불안함, 비 오는 날 조카뻘인 저에게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하시던 협력업체 대표 김광중씨의 절박함, “그래도 희망 버리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꼭꼭 씹어 말씀하시던 공무원 백일성씨의 단단함. 이 모든 감정을 안고 군산은 위기를 나고 있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숨 쉬기 어려울 만큼 꽉 들어찬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서울의 번잡함과 군산의 한산함을 자주 번갈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묵묵한 도시와 사람들한테 빚진, 번화한 거리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건 아닐까. 마감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잘 떠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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