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에서 여명구 삼성전자 DS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합의안에 서명한 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은 역설적으로 사회·경제적 위기를 낳았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투명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예고했다. 파업으로 반도체 공장이 멈추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삼성전자 노사가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총파업 돌입 1시간30분 전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위기는 일단락됐다. 그렇지만 ‘반도체 기업에서 발생한 막대한 초과이윤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에 여전한 과제로 남게 됐다.
삼성전자 노사는 2026년 5월20일 밤 10시30분께 경기도 수원의 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2026년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5월21일 0시로 예정됐던 노조의 총파업은 유보됐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대상 투쟁지침을 통해 “5월21일~6월7일 총파업은 추후 별도 지침시까지 유보한다”고 공지했다.
노사 협상의 쟁점은 성과급 배분 문제였다. 국내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2026년 예상 영업이익이 최대 330조원,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27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27년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를 제치고 49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영업이익 1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성과급 상한제가 폐지돼 2026년 예상 성과급이 1명당 5억원이지만, 삼성전자는 개인 연봉의 50%까지인 성과급 상한제가 있어 1명당 평균 4천만~5천만원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쟁사 노동자들이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가는 ‘상대 열위’의 상황에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박탈감이 커진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고,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 쪽은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 재원으로 삼되, 연간 영업이익 200조원 달성 또는 국내 업계 매출액 1위를 달성할 경우 특별포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의는 202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 공동교섭단은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와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공감하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연이은 노조 가입에 힘입어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초기업노조)는 창사 첫 단일 과반 노조가 됐다. 그러나 사 쪽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교섭은 결렬됐다. 중앙노동위원회로 공이 넘어갔지만, 2026년 3월 조정이 중지됐다. 초기업노조를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3월9일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했고, 3월18일 노조는 93.1%의 찬성을 얻어 쟁의권을 확보했다. 노조는 두 달 뒤인 5월21일~6월7일 총파업을 예고하며 성과급 투쟁의 불씨를 키웠다. 삼성전자 노조는 4월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조합원 4만 명가량이 참석해 쟁의 동력을 얻었다.
노사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 5월11~13일 열린 1차 사후조정 회의와 18일부터 20일 오전까지 이어진 2·3차 사후조정 회의에서도 노사는 협상을 이어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성과급 재원의 70%를 사업부와 관계없이 똑같이 나누고 나머지 30%는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사 쪽은 그렇게 되면 적자 사업부도 거액의 성과급을 받기 때문에 성과주의 원칙이 깨진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압박에 나섰다.
노사는 5월20일 오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주재에 나서면서 막판 협상이 이뤄졌다. 결국 총파업이 예고된 5월21일을 1시간30분 앞두고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양쪽은 노사가 합의한 사업 성과의 12%(성과인센티브+특별경영성과급)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되 이 가운데 특별경영성과급 재원(10.5%)은 전액 자사주로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자사주에는 일정 기간 매각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는다. 개인 연봉의 50%까지였던 기존 성과급 상한은 향후 10년간 두지 않기로 했다. 노사 양쪽의 주장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장은 “잠정합의안 투표 운영과 조합원 소통에 집중하겠다. 앞으로 삼성전자 노사관계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입장문을 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 아울러 기업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더욱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5월23일 오전 9시부터 28일 오전 10시까지 이날 발표한 잠정합의안에 대해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등이 주최한 ‘반도체 초과이윤, 어떻게 나눌 것인가’ 긴급좌담회가 2026년 5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리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총파업이라는 파도는 막았지만, 기업의 초과이익 배분이라는 한국 사회의 숙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성과급 논의 자체가 삼성전자라는 테두리를 넘어가지 못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잠정합의의 주체는 삼성전자 사 쪽과 본사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을 뿐, 삼성전자 한국 사업장 인력의 25.4%인 약 4만3천 명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제됐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지부장은 하청업체와 성과를 나눠야 하지 않냐는 주장에 “(본사)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고, 입사할 때 채용조건이 달랐는데 일률적으로 같은 선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조건준 ‘아무나유니온’ 대표는 5월20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반도체 초과이윤, 어떻게 나눌 것인가’ 긴급좌담회에서 “재벌기업은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하청노동자를 쥐어짜서 초과이윤을 얻는다”며 “재벌기업의 노동자들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으면 초과이윤을 위한 착취를 용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본사 노동자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씨도 남았다. 이번 합의로 수억원대의 성과급을 받게 된 건 반도체(DS) 부문 노동자에게 한정됐기 때문이다. 2026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전망대로 300조원대가 나온다면, 특별경영성과급과 사업부별로 나누는 성과급을 모두 받는 DS 부문 노동자는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에 더해 1명당 최대 6억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지만, 가전과 모바일 등 완제품(DX) 부문 노동자는 기존에 받던 성과급 상한이 적용돼 연봉 1억원 기준 5천만원 수준의 성과급만 받게 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사업부별 성과급 차등 지급은 기업 내부에서 사업부 간 임금 격차를 구조적으로 심화한다”며 “‘우리끼리의 이익’이 ‘전체 노동자의 이익’보다 앞서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초과이익 배분 논란은 단순히 반도체 산업만의 이슈가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이다. 안정화 노동포럼 나무 대표는 “초과이윤 문제는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화두가 된 것도 반도체 업종 노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대안도 산업 전체를 두고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반도체 초과이윤 분배 논쟁은 단순한 노사 대립이 아니라 자본 내부, 노동 내부, 국가 내부, 기업 내부에 걸친 다층적인 이해 충돌의 장”이라며 “한국 사회의 5대 이해관계자(회사·주주·본사 노동자·하청노동자·국가) 모두가 참여하는 새로운 제도적 협약이 사회적 제도로서 기업에 필요하다”고 밝혔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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