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살 재러드 라모스는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도망치지 못하게 편집국 비상구를 막고선 산탄총으로 기자 넷과 판매 보조원을 쏴 숨지게 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 있는 신문사에서 벌어진 언론인 학살의 동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노동통계국에서 근무하던 라모스의 집은 신문사에서 40㎞ 떨어져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 친구를 따라다녔지만, 상대에겐 “악몽”이었다. 계속된 괴롭힘으로 기소돼 유죄를 받았다. 신문사가 이를 보도하자, 이후 수년 동안 기자들을 위협했다. 보도로 피해를 봤다면서 명예훼손 소송도 냈지만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권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총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이나 반론 보도 등을 신청한 건수는 집계를 시작한 1981년 44건에서 민주화운동이 있기 전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니 참여정부 때 1천 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3562건으로 늘었다. 잘못 쓰면 칼보다 무서운 펜으로 당한 피해에 맞서 주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입법, 사법, 행정에 이은 제4부라고 하는 언론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잘 작동한다는 증거이자 성숙한 민주주의의 지표로 해석할 법하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법원 출입기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전담하는 재판부를 찾아가 현황을 스스럼없이 물어볼 만큼 언론은 부적절하게 권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2019년 지금 권리 뒤에 숨은 위협 심지어 폭력의 전조는 비단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엿보인다. 지난해 중재위 전체 신청 건수 가운데 10% 넘는 364건(2018년 1~11월, 종결일 기준)이 성폭력 사건인데 그중 태반이 가해자가 보도 사실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미투 사건’에서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명예를 가진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무고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피해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정정이나 반론 보도 신청을 하거나 민형사상 소송을 거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확정판결 전까지 가해자의 법적·제도적 권리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소송은 종종 피해자뿐만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번거로움을 넘어서 위협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한겨레신문사와 기자를 상대로 한 형사소송만 5건, 올해는 벌써 3건에 이른다. 2년 전엔 1건, 3년 전엔 0건이었다. 민사소송도 올해 이미 5건으로 증가 추세다.
이번주 모든 기자가 마감으로 바빴지만, 김현대 선임기자는 소송 준비에 바빴다. 그의 책상엔 두툼한 서류 뭉치가 즐비했다. ‘보훈 재벌의 탄생’(제1260호) 기사를 문제 삼은 김덕남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장이 그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산경찰서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31년 된 베테랑 기자에게도 피고소인은 익숙해질 수 없는 신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소돼 법정에서 기약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지난 5월 200여 명의 상이군경회 회원이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김 선임기자 해임을 요구하고 을 맘껏 규탄했다. 시위 있기 전주에는 임원 다섯 명이 찾아와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했다. 그 뒤 이어진 고소였다. 김덕남 회장의 권리도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고소는 또 하나의 위협으로 기자에게 다가왔다.
라모스의 위협이 총격으로 귀결된 그날 는 예정대로 다음날치 신문을 냈다. 기자들은 아수라장이 된 편집국이 아닌 주차장에서 기사를 썼다. “언론에 대한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면서. 미국 퓰리처상 위원회는 이 신문사에 “언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는 데 쓰라며 1억2천만원의 상금과 함께 특별상을 줬다.
소송이나 협박, 그 어떤 위협이 닥쳐와도 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상이 있든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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