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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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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무심하고 무뎌져가는 세상에서도 빛나는 위로
등록 2018-12-08 10:35 수정 2020-05-03 04:29

쌀국수의 위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회사 근처 쌀국숫집. 류이근 편집장의 “공덕 핫플레이스”라는 말에 따라간 곳이다. 그 말에 혹해 온 21 기자 몇몇이 둘러앉아 쌀국수를 먹었다. 쓸쓸한 가을바람 때문이었을까. 뱃속도 마음도 허기져서일까. 이날 잡담의 주제 중 하나는 ‘위로’였다. 나는 예전에는 위로의 말이 “힘내” “잘될 거야”였다면 이제는 “○○해도 괜찮아”라는 말인 것 같다고 했다. ‘괜찮아’가 빠릿빠릿 살아야 치이지 않는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지친 이들을 토닥이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쌀국수의 소소한 위로 속에 제1240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다룬 표지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위로 기획에 이승준 기자와 장수경 기자가 합류했다. 우리는 텔레그램에 ‘괜찮아 괜찮아’(괜괜)방을 만들어 소통했다. 오전에 잠깐 괜찮아졌다가 오후에 오래 안 괜찮아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를 보내며 이 방에 위로의 노래, 위로의 짤(동영상)을 올리고 공유했다. ‘마감 인간’ 기자로 사는 우리도 괜찮아지려고 그랬다.

책, 음악, 웹툰 등 ‘괜찮아’라는 위로를 찾아 취재했다. 올해 베스트셀러이자 2030세대의 위로 에세이 의 공감형 위로에 대해서도 취재했다. 위로의 심리 도서를 읽는 독서모임에도 참석했다. 국도 1번의 시작점 전남 목포에 있는 ‘괜찮아 마을’까지 갔다. 취재하며 만난 이들은 다들 경쟁과 평가에 지치고 나를 잃고 남의 속도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힘들어했다. 빠르게 걷다보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작고 따뜻한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들. 일상의 작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나날들. 그렇게 지쳐갈수록 감정은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아픈 나조차 돌보지 못하고 타인을 향한 공감 같은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렇게 무심하고 무뎌져가는 세상에서도 위로는 곳곳에서 빛난다. 내가 위로받았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돌보며 지쳐가던 날 우리 아이를 걱정하던 한 아이의 눈빛을 봤을 때.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나를 보러 온 후배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 닿았을 때. 퇴근 없는 워킹맘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토닥했을 때. 자존감이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졌던 나에게 “넌 귀한 사람”이라고 한 선배가 말했을 때. 혐오와 차별의 말은 칼이 되어 평생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지만, 이렇듯 위로의 말과 몸짓은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는 마음의 온기를 준다. 그 절망의 순간 버티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기사를 함께 쓴 동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이 있단다. ‘괜괜’의 4살 아들을 둔 이승준 기자는 “애 안 봐도 괜찮아”라는 말, 매주 마감에 힘든 장수경 기자는 “이 기사 다음주에 써도 괜찮아”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겨울의 어느 날, 위로의 기사를 마감했다. 늦은 마감을 하고 ‘괜괜’방에 올린 위로의 시를 다시 읽었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한강의 시 ‘괜찮아’ 중에서)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뉴스룸에서
이승준 기자

이승준 기자

또 받았습니다! 전정윤·조윤영·허윤희·진명선 (오른쪽부터) 기자와 박수진 전 기자가 함께 써온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재판 단독 보도·#미투 연속 보도’가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는 ‘양성평등 미디어상 최우수상’에 선정됐습니다. 의 ‘영원한 총무’ 변지민 기자가 요새 더욱 바빠졌다고 합니다. 수상자들에게 건넬 꽃다발 사러 다니느라요. 축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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