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18년 기자를 하면서 독자의 중요성을 실감한 건 딱 두 번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다. 오랫동안 기사 잘 봤다거나 기사를 왜 이따위로 쓰냐는 독자가 친숙했다. 제보를 해주는 독자는 행운이었지만, 손에 꼽기도 어려웠다.
4년 전 일이다. 지금은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미국의 어느 소도시 신문 사례를 보았다. 작은 이 신문은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뉴스룸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기자들이 다음날 치 신문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 논의하는 자리에 관심 있는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편집국의 문을 열었다. 그 과감함에 놀랐다.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펜을 놓고서 독자로 지낼 때의 경험도 그랬다. 2015년 9월 미국 디지털판 구독을 시작했다. ‘WSJ+’에 가입하자 전자우편이 날아왔다. ‘+’는 정기구독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 ‘초대’ ‘특전’ ‘영감’을 뜻했다. ‘기자 독자’여서 그런지 뉴스룸 견학, 에디터와 대화, 음식 기자(푸드 저널리스트)들과 만남 따위 행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나라에서나 보던 사례가 (21)에서 실험되고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독자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고민은 ‘독자가 21입니다’(제1214호 ‘만리재에서’)로 표현됐다.
때마침 그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는 21에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실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21에 결정적 힘이 된다”는 문구를 얹혔다. 그때 그는 새롭게 모집하던 독자편집위원회 위원을 ‘독편3.0’으로 명명했다. 독편1.0이 온전히 수동적 독자였다면,
독편2.0은 가끔 모여서 지난 기사를 되짚는 소극적 참여 독자라 할 수 있다. 독편3.0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도 참여하는 적극적 독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독자 참여저널리즘의 신호탄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실험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지금껏 200명의 ‘진성독자’가 모였다. 이 가운데 72명이 ‘한겨레21 독편3.0’이란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들어와 있다.
이곳은 월요일 아침부터 왁자지껄하다. 편집장은 표지 이미지를 휴대전화로 찍어 단톡방에 올린다. 전주 마감 때 의견을 물었던 표지 이미지 가운데 어느 게 실제 표지로 결정됐는지 알린다. 때론 독자와 뉴스룸의 의견이 다를 때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늦어도 화요일에 다음호 표지 기사를 알리고 의견을 구한다. 실제 노회찬 의원(제1223호)과 계엄 문건(제1225호)을 표지로 썼을 때, 독자 의견을 반영한 기사를 한 꼭지씩 추가했다. 다른 때에도 표지를 준비하는 기자들은 독자 의견을 참고한다. 목요일쯤엔 지난호 기사 되짚어보기를 한다. 마감날 밤에는 뉴스룸에서 제작한 복수의 표지 이미지를 단톡방에 올려 의견을 묻는다. 독자와 뉴스룸이 함께 표지를 결정한다.
독편3.0 실험은 다시 한발 더 나아간다. 바로 ‘표지 공모제’다. 20명 넘는 독자가 표지이야기로 써볼 만한 수십 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뉴스룸에서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다시 독자들의 의견을 묻고 기자들의 취재를 더해 몇 달 안으로 표지 기사로 만들 계획이다. 독자도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독자와 기자가 협업해 내놓는 최초의 21 표지 기사 탄생을 예약해뒀다. 기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방송사의 저녁 8시나 9시 뉴스 또는 신문의 1면 머리기사를 독자에게 제안받아 함께 취재하고 보도하는 사례는 보지 못했다.
21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실험을 한다. 그래서 감히 ‘독자 참여저널리즘 3.0’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 독자 참여저널리즘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건 식상하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서다.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는 또 하나의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중요성은 끊임없이 언급돼왔지만 실천되지 않았을 뿐이다. 21도 이제야 실천한다.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길 맨 앞에 독편3.0을 잉태한 진명선 기자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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