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폐지의 선구자는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아닌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다. 윌버포스의 노력 덕택에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선 1833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 그보다 26년 앞서 그는 노예무역을 폐지했다. ‘11전 12기(12번째 법안 상정)’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몇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영국 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맞아 란 이름으로 그의 삶을 다룬 책과 영화도 나왔다.
정치인인 그의 삶을 흠모했던 우리나라 정치인이 있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국회의원이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한 그의 견고한 신념과 의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눈앞의 이익보다 옳은 길을 선택할 줄 아는 그 뚝심을 닮고 싶다.” 윌버포스를 닮겠다는 그는 혼란스러울 때마다 를 떠올린단다.
그가 그나마 윌버포스에 가까이 갔던 때는 2016년 전후다. 대통령 탄핵소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심판에서 죄를 묻는 검사 역할을 수행했다. 야당 의원에게 막말을 퍼붓는 등 잡음이 없지 않았으나 제 역할을 무난히 소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즈음 말로 드러난 그의 신념과 의지도 올곧았다.
“대통령의 행위에 0.0001%라도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한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본다. …대통령이든 9급 공무원이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 징계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박근혜가 대주주로 있던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에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탈은 잠시에 그쳤다. 그는 이내 정치적 고향인 새누리당으로 귀환한다.
3선 정치인 권성동을 특징짓는 수식어가 둘 있다. 하나는 ‘엠비(MB) 경호실장’이다. 처음 정치를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방어했다. 나는 당시 에 있으면서 BBK를 파헤쳤으나, 검찰 특수부장 출신의 그가 친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그 공로로 그는 이듬해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마했다. 그 뒤 청와대에 들어가 법무비서관을 지낸다. 그리고 2009년 강릉에서 금배지를 단다.
또 다른 수식어는 ‘국조 파괴 전문요원’이다. 시민사회단체나 민주당, 출입기자 등에게 듣는 말이다. 2016년 참여연대 등 6개 단체는 엠비 자원외교의 ‘진상규명을 방해했다’며 권 의원의 낙천을 촉구했다. 2013년엔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증인 채택 등을 번번이 무산시켰다.
경호실장이나 파괴 전문요원이나 뿌리는 엠비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엠비는 지금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권성동이란 이름을 처음 안 건 2012년이었다.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를 출입할 때였다. 권 의원이 지경부 산하기관인 한전과 6개 발전사에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TV조선의 드라마 에 협찬하도록 ‘권유’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면서다.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그의 ‘갑질’은 “순수한 의도”란 말로 조용히 넘어갔다.
2017년 잊고 지냈던 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다. 디스커버팀 에디터로 있으면서 임인택·조일준·최현준·임지선 기자와 강원랜드 부정채용을 취재하면서다. 그의 이름이 채용 청탁자 명단에 박혀 있었다. 그는 그런 적이 없다며 뚝심 있게 버텼다.
그러다 지난 2월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개그맨 강유미씨가 들이닥쳐 “강원랜드에 몇 명 정도 꽂으셨나”라는 돌직구를 그에게 던졌다. 그를 수사했던 안미현 검사는 외압을 폭로했다. 지난 5월엔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해 그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청탁 대상자는 신입사원만 15명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그를 지키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었다. 다시 국회는 헛돌고 있다.
그는 윌버포스가 되기엔 너무 멀리 왔다. 그도 알 것이다. 그가 ‘옳은 길을 선택했다’고 여겨줄 이는 자신이 2년 전 ‘공사 구분 못하고 국민을 도외시한다’고 비판했던 자유한국당을 빼면 몇이나 될까.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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