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배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기억이다. 현실에 눈감을 수는 있지만, 기억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다. 그것은 뻘밭과 같다. 헤어나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 컴컴한 진흙이 덩이를 이뤄 발목에 꽉 매달린다. 기억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
“진짜 무섭고! 나는 지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이거(구명조끼) 끈 꼭 묶었습니다. 저는, 난 살고 싶습니다. 아 진짜, 난,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와 진짜, 나 무서워요. 지금 나 진짜 울 것 같아요. 나 어떡해요?” 스마트폰 영상 속에서 아이는 무서워 운다. 아이는 살지 못했다. 어떡하면 좋으냐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과 재단법인 ‘진실의힘’이 1년간 공동 추적한 내용을 엮은 (진실의힘)을 읽으며, 삶의 존엄을 생각했다. 그 기록에 의해 영원히 기억으로 남겨질 세월호의 마지막 순간, 인간의 위대함을 입증한 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였다. 아이들은 서로 위로하고 지키고 구했고, 그러다 죽었다. 어른들은 추하고 무능하고 비겁하게도 아이들을 팽개치고 달아났다.
어른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괴로웠는데, 또 다른 책 한 권을 읽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이 쓴 (열린책들)이다. 지은이의 어린 시절 기억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어느 대목은 나의 것과 닮았고, 어떤 대목은 나의 것과 다르지만, 그래서 정답고 위로가 됐다.
지은이는 각자의 ‘마음속 어린이’를 불러와 대면하라고 권한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어른인 척하는, 늙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품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어린이인 것이구나. 기억 속 소년을 제대로 품지 못해 삿된 것에 휘둘리는, 그래서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할 순간조차 알아차리지 못해 제 삶을 망가뜨리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로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어린이날은 어른을 위한 날이기도 하다. 마음속 다락방에서 코를 무릎에 박고 웅크려 있는 각자의 어린이를 불러와 담담하게 대면하고 보살피는 날이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에 이렇게 적었다. “소년을 잘 간직한 채 성장하여,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고이 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평생토록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린이 특집판을 만들었다. 주변의 어린이와 함께, 무엇보다 각자 내면의 어린이와 함께 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대화를 거쳐, 아름답고 섬세하고 집요한, 속이 탄탄한 나무를 닮은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격랑에 휩쓸리는 아이들에게 뗏목이 되어줄, 빛나고 반짝이는 어른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기억을 털어내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면하는 용기를 가진 어른들이 가득 찬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세상에서야 비로소 매일매일이 어린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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