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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8년 후

등록 2015-12-30 14:57 수정 2020-05-03 04:28

에서 첫 독자와의 데이트다.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설레었다. 때마침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셀 수 없이 많은 독자 가운데 고병현(33·왼쪽)씨의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2007년 세상의 화두는 88만원 세대였습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당시 세후 급여가 87만원! 88만원도 안 되는 처지에 매주 가판(가두 판매)대에서 을 사보며 88만원 세대를 걱정하고, 응원하던 그때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는 지금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애초 그는 퀴즈대잔치에서 1등을 주면 단박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조건 없이 인터뷰에 응했다.

고병현 제공

고병현 제공

한때 ‘88만원 세대’였다. 지금은 어떤가.

2008년 대학을 졸업했다. 비정규직으로 2년간 일하다가 2010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가판대에서 을 사보던 시절보다 월급도 훨씬 많다. 3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다.

공무원 생활은 어떤가.

바쁘다. 미안한 얘기지만, 잡지 읽을 시간도 내기 어려워서 쌓아두고만 있다. 사회 문제에도 감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직업 특성상 보수적 환경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그나마 을 통해 잘 몰랐던 정치 문제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는 어떻게 만났나.

대학 시절인 2004년부터 가판대에서 사서 봤다. 결혼 뒤에는 아내에게 정기구독을 선물해달라고 했다. 2012년 생일 때, 아내가 무려 2년치 정기구독을 선물했다. 이후에는 다시 가판대에서 사보고 있다.

이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을 꼬집어달라.

경제 기사의 경우 각종 용어나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독자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풀어서 써줬으면 좋겠다. 정기구독자에게 매주 수요일에 배송되는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나도 그렇지만, 배송이 늦어 정기구독 대신 월요일에 가판대에서 사서 보겠다는 독자도 여럿 봤다.

2016년에 꼭 다뤘으면 하는 기사가 있다면.

새해에는 총선 같은 큰 정치 이벤트가 있다.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전망과 분석을 깊이 있게 다뤄주면 좋겠다.

88만원 세대였던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때 88만원 세대에게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힘이 없었고, 사회적으로 늘 어딘가에 종속돼 있었다. 인간관계도 단절되는 시간이었다. 기회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때보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이제 주위에 시선을 돌렸으면 한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뭐하나.

야근할 것 같다.

그는 지면을 빌려 아내 송혜림씨에게 “사랑해, 마느님~ 내년 생일에는 선물로 정기구독 다시 해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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