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마감 땐 표지이야기 기사를 쓰던 아무개 기자가 자판을 두드리다 말고 수차례 울컥울컥했더랬습니다. 꼭꼭 묻어뒀던 기억을 힘겹게 되살리며 자신이 몸소 겪은 의료소송 경험을 기사로 풀어내려다보니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탓이죠. 이번주엔 쌍용자동차 판결 기사를 맡은 황예랑 기자가 도통 ‘진도를 못 나가고’ 무척 힘겨워했습니다.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데, 그새 눈자위가 부어올랐습니다. 취재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마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혹한 나날입니다.
2014년 11월13일 오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선 100여 장의 A4용지가 하늘에 휘날렸습니다.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터로부터 내몰린 해고노동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적힌 종이였죠. 청년 전태일이 자그마한 제 한 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고발한 지 꼭 44년째 되는 이날, 대법원은 기어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습니다. 해고노동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가 승리했던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 결정을 내리면서입니다. ‘정리해고는 유효하다.’ 5년 동안 동료 25명을 먼저 떠나보내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매일 2천배를 올린 사람들을 향해 대법원이 던진 한마디는 잔혹 그 자체입니다. 건장한 사내들의 앙다문 입술을 뚫고 “비수를 꽂았다” “대못을 박은 판결” “노동자의 고통을 쥐어짜는 숙주”라는 분노 섞인 외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이날의 풍경은 ‘노동의 정치’가 실종된 공간에서 ‘자본의 법’이 행사하는 지배력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 모릅니다. 대법원은 회사 쪽이 외부에 용역을 준 회계보고서가 구조조정의 명분을 얻을 수 있도록 손실액을 과다하게 추정했다는 논란이 일었음에도,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으므로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 해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상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술방망이를 자본에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날의 판결이 단순히 ‘쌍용차 판결’로만 그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대법원 앞 하늘에 휘날리는 종이는, 애초 해고 무효 판결이 내려질 경우 5년간의 기다림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할 ‘준비물’이었답니다. 꿈은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허공을 떠다니는 건 한낱 종잇장이 아닙니다. 흩날리는 종잇장처럼 ‘존재의 가벼움’을 일방적으로 각인당한 수백 명의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입니다. 우리 사회의 맨얼굴입니다.
어김없이 찾아든 금요일, 정신없이 마감 작업에 매달리다 잠시 틈을 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전날의 울분을 삭이며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네요. 쌍용차 판결이 쌍용차 판결만은 아니듯, 쌍용차 싸움이 예서 물러서야 할, 그들만의 싸움일 순 없겠죠. 여기 한 구절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모진 시간이 사람들 기억에서 낡고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만, 그 두려움과 막막함에 목구멍이 막히는 그런 날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 그런 날이 오늘은 아니다. 싸우자 싸워보자… 이 말조차 빈말이라도…. 사랑한다 동지.
지난 6월 초(제1015호)에 시작한 ‘기억 0416’ 연재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아름다운재단과 공동으로 진행해온 ‘기억 0416’ 모금 캠페인은 많은 분들이 정성을 모아주신 덕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록 ‘기억 0416’ 연재와 캠페인은 끝을 맺지만, 은 앞으로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고,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비롯해 참사로부터 상처받은 모든 이들이 무사히 치유되도록 돕는 데 더욱 힘쓰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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