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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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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 놓고 보기

등록 2014-05-06 13:49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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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도서관에서 일할 때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였던 곳이 수군거림으로 들썩였다. 주변을 살폈다. 소음이 들렸던 곳은 이용자들이 모여 있는 광장. 다닥다닥 붙어 책을 읽던 이용자들이 모두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중심에는 얼굴엔 흉터가 가득하고 성인 남자 두 명의 덩치를 가진 이용자가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다시 할 일을 했다. 험악한 인상의 이용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용자는 순박한 눈웃음으로 물었다.

“여기 어린이 책은 없나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네요. 딸 보여줄 책을 찾는데….” 이상했다. 불만을 가득 품고 민원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린이 책은 청소년 도서관으로 가셔야 해요. 분리돼 있거든요.” “그래요? 어쩐지. 혹시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없을까요?” “지도 드릴게요. 여기예요.” “우아,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이용자는 꾸벅 인사를 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칭찬에 손사래를 쳤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이 도서관은 매일 수천 명의 이용자가 드나든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능력이 길러진다. 잠을 자러 온 것 같은 노숙자와 의학 도서를 찾을 이용자를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능력 말이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무의식적으로 달라진다.

편견에 갇힌 ‘나’를 깨달은 것은 대학 시절 1년 동안 해외에서 생활할 때다. 비만인 사람이 비키니를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경찰 시험에 합격했지만 시골의 작은 호텔에서 일한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쉬워했다. 겨울에 대형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사장님이라고 소개받은 분이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입고 리프트 점검하는 것을 보고 “저분 사장님 맞아요? 기계 고치는 분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알던 세상과는 달랐으니까. 뚱뚱한 사람이 바닷가에서 비키니를 입는 것은 창피한 일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포기하면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고, 사장님은 기름때를 묻히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살았던 나였으니까.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용자 사건(?)을 계기로 변하기로 했다. 상대방이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날부터 모든 사람들을 ‘0’에 놓고 보기로 했다. 모든 이용자를 평등하게 대해야 할 도서관인으로서 편견을 가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작은 행동이었다.

신기한 일들이 펼쳐졌다. ‘내’가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의 편견 속 꺼려지는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틀 안에서 허우적대며 아등바등했던 날들은 멀어져간다. 편견의 틀에서 벗어난 나는 정말 행복하다.

홍희정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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