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일
여자친구가 묻는다. “내일 우리 뭐해?” 남자친구가 대답한다. “영화 보고 밥 먹고”. “그럼 모레는 뭐해?” “밥 먹고 영화 보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했을 이 장면은 어느 자동차 회사의 TV 광고였다. 결론은 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서 캠핑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뭐하나. 캠핑 가면 또 뭘 먹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나 내려받아서 볼 텐데.
대리만족이라도 해보겠다고, 연애하는 친구들한테 짓궂게 물을 때가 있다. “그래서 데이트 뭐했어?” 백이면 백, 답은 비슷하다. “먹고 마시죠.” 여기에 뭔가를 더했다고 하면 앉아서 뭘 보는 거다. 영화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연인들의 문화가 이러할진대, 친구나 동료와 하는 일도 뻔하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이렇게 무한 반복하면서 뱃살을 함께 늘려나가는 것이 사교고 오락이다. 어른들만 그런가. 아이들은 더 심하다. 학교 가서 책 보고, 점심 먹고, 또 학원 가서 책 보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그러고 나서 TV 보고, 컴퓨터 보고, 만화 보고.
정말 우리는 다양하게 놀 줄 모른다. 나만 해도 그렇다. 술이 없으면 사람과 이야기를 못하고, 밥 먹자는 것 말고 친구를 불러내는 재주가 없다. 누가 인류를 호모루덴스라 했으며, 한민족을 ‘흥의 민족’이라 했을까. TV 프로그램은 맛집 정보가 다 차지하고, 노래도 춤도 술기운이 없으면 못하는 인류로 퇴화한 21세기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술 먹이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러고 보니 온 거리에 술집과 음식점만 즐비하다. 언젠가부터 보드게임방도, 당구장도, 볼링장도, 탁구장도, 오락실도 하물며 만화가게나 PC방도 찾기 힘들다. 이렇게 ‘잡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들을 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는가. 그래서 골목상권이 죽어가고 있으며,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는 금방 시들해지며,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찌들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잡기’가 필요하다. 재미있게, 신나게 노는 것만큼 제대로 된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함께 게임도 하고 내기도 해봐야 커뮤니케이션도 잘된다.
무엇보다 그렇게 놀아봐야 ‘아, 놀지만 말고 책이라도 한 권 사서 읽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맨날 스마트폰 화면과 모니터에 코를 박고 뭘 보고 있는데, 또 책을 보라고? 독서 인구가 주는 것은 다 잡스러운 놀이문화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주 독서는 불가능하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잡기’ 하나씩 가져들 봅시다. 세상이 풍요로워질 거예요. 무엇보다 출판쟁이들도 좀 먹고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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