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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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뽁뽁이 터트리지 맙시다

등록 2014-03-18 15:04 수정 2020-05-03 04:27
정용일

정용일

퇴근길에 들른 아파트 경비실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택배가 곤히 잠들어 있다가 나를 맞는다. 반가운 마음에 성스럽게 포장된 비닐 봉인을 단박에 풀어헤치고 누드김밥처럼 밥알 모양 뽁뽁이(에어캡)로 잘 말려 있는 키보드를 꺼내보았다. 내 자유를 억합하는 케이블로부터의 해방을 조금이라도 서둘러보고 싶어 키보드를 싼 뽁뽁이를 풀어헤칠 때 두 딸은 어깨너머로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의 관심은 내 지압을 받아주는 키보드보다는 압력의 긴장감과 청량한 소리를 선사해주는 뽁뽁이에 가 있을 게 분명하다.

내 예상대로 두 녀석은 그걸 가져다 양 끝에서 영토싸움이라도 하듯 하나둘 터트린다. 급기야 발로 밟아 터트리려는 아이들을 아파트 아래층에 괜한 피해를 주기 싫어 억지로 말린다. 그렇게 뽁뽁이는 온몸이 뜯긴 채 만신창이로 다음날 아파트 1층의 비닐수거함에 버려지겠지? 오늘 저녁은 일반 비닐보다 많은 공정을 거쳤을 복합 데커레이션 시스루 합성물질에 애도를 표하고 싶다.

인터넷이 우리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 이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과 가격에 민감한 혹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후원 속에 인터넷 쇼핑과 통신판매, 물류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다는 건 나도 알고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와중에 뽁뽁이의 수요와 생산과 소비 역시 많아졌을 테고, 최근 들어 겨울철 가정용 최첨단 신소재(?) 단열재로서도 그 쓰임새가 확장됐다. 웬만한 집의 베란다와 유리창을 감싸고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이놈은 우리 생활에 온몸으로 효용과 가치를 제공하는 착한 놈이다.

그런데 이놈도 비닐이란 데 문제가 있다. 아이들 손톱에 눌려 중간중간 볼록한 배가 터지면 용도 폐기돼 땅속에서 몇백 년 동안 분해돼야 하는 운명은 여느 비닐봉지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뽁뽁이에게 많은 은혜를 받고 있지만, 분명 지구를 위해서라면 이놈의 사용은 최소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환경부 공무원도 아니고 더욱이 작문 소질도 없는 내가 단지 애독자로서 이런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택배 보호용이든 단열용이든 온전한 뽁뽁이를 모아서 우체국에 반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체국이 이 아까운 뽁뽁이를 모아 산하에서 운영하는 택배 부문에 활용토록 한다면 비용 효율이나 환경보호 측면에서 사회적 비용을 감축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냄새 없는 방귀 소리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나 정서 불안을 가진 어른의 손에 배가 째지지(?) 않게 사용된 뽁뽁이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 인식이 공감돼야 할 것이다. 한 번 쓰이고 묻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비닐이 이 지구를 시름시름 앓게 하고 있다. 유리병이나 재생지처럼 뽁뽁이도 리사이클링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공식화되고 환경에 투자된다면 포장비용이나 환경보호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절감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몇 주 전 여기 ‘레디 액션!’에 상갓집에 갈 때도 본인의 수저와 손수건, 술잔 등을 가지고 다니시던 어느 선생님의 실천적인 모습을 보며 세상에는 한 번 쓰고 버리기에 아까운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해봤다.

오영준 독자

*‘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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