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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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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에 가자, ‘안녕’ 자보를 연습하자

등록 2013-12-24 17:25 수정 2020-05-03 04:27
윤운식

윤운식

조금 친한 친구와는 얌전하게 커피를 마시러 가고, 많이 친한 친구와는 감자탕을 먹으러 가고, 진짜로 친한 친구와는 청하를 마시러 간다. 그러다가 정말 맘에 쏙 드는 친구가 생기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수요일 저녁에 뭐해?” “글쎄… 왜?” “그날 바쁘지 않으면 나랑 글방에 가자.” 친구는 눈썹을 찡긋 올리며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거긴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이야.”

한마디로 글방은 글을 써오는 모임이다. 글쓰기 강좌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누가 누구를 딱히 가르치지 않으니 적절하지 않아서 그냥 ‘글방’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글쓰기 모임은 여러 곳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어딘글방’이다. ‘어딘’이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글과 사람이 모인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서로가 써온 글을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눈다. 글방의 인물들은 이곳에서 깔깔대며 웃고 감탄하기도 하고 가끔은 지독하게 쪽팔려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주 재미난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간다.

어딘글방에서는 온갖 글들을 취급한다. 소설, 시, 수필, 시나리오, 희곡, 기획안, 야한 소설… 어떤 형식의 글을 써와도 모두가 정성스럽게 읽는다. 사소한 일기나 자기소개서, 대자보에 써넣을 글을 들고 와도 되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연애편지를 퇴고받을 수도 있다. 자신이 쓴 것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한 경험인지 모두가 배운다. 보여주는 연습뿐 아니라 누군가가 써온 글을 공들여 읽는 연습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속 즉흥적인 텍스트가 아닌, 종이에 프린트된 긴 글을 여러 편 읽는 시간을 가진다. 글방엔 온갖 비밀과 재미난 이야기가 모여든다. 글을 오래 쓰고 싶은 사람이든 글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든 상관없다. 나이도 상관없고 직업도 상관없다. 그냥 이번주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오면 된다. 글방의 인물들은 디테일에 강하며 웬만한 크리틱엔 쉽게 상처받지 않을 만큼 능청스럽다. 그리고 이상한 방식으로 섹시하다.

당신이 쓴 글을 보여줄 곳이 없어서 답답하다면 글방에 가자. 이야기가 고프다면 글방에 가자. 글에는 딱히 관심이 없고 다만 글 쓰는 여자애들이 과연 예쁠지 궁금할 뿐이라면 멋진 옷을 입고 글방에 가자. 황금 같은 겨울방학에 남들 다 가는 영어학원에 시간을 쏟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면 글방에 가자. 혹은 영어학원에 다니면서도 수요일 저녁엔 글방에 들르자. 수업이 어떨지 간을 보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청강해보자. 묻고 싶은 게 있다면 sool6049@naver.com으로 전자우편을 보내자. 글을 보고 누군가에게 반할 수도 있는지 궁금하다면 글방에 가자. 심심하거나 적적하면 글방에 가자.

왜냐하면 나는 글방 덕분에 조금은 안녕했으니까. 그리고 당신도 안녕할지 궁금하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나는 이토록 사심 가득한 제안을 한다. 이슬아 제5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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