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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단순했지만 과정은 지난하고 구구절절했다. ‘전기’라는 에너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원전에 반대하는 의견을 굳히면서 내가 쓸 전기를 내가 직접, 혹은 내 주변에서 생산한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슬금슬금 자가발전을 알아보았다. 자전거 형태가 가장 끌렸다. 체력도 기르고 전기도 만들자! 그러나 그 꿈은 곧 깨졌다. 인간의 힘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기는 극히 적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자전거발전기를 만드느라 들인 전기와 재료만큼, 그 이상으로 내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햇볕발전기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마찬가지 질문이 남았다. 햇볕발전기를 만드느라 들인 전기와 재료보다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내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자전거로 돌리는 세탁기 사진을 보았다. 이거 좋다! 굳이 전기를 생산한 다음에 그 전기로 다른 기계를 돌릴 필요는 없잖아? 직접 돌리면 되지. 하지만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발로 돌리는 대신 손으로 하면 된다. 물론 세탁기를 직접 끙끙 돌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계를 하나 더 줄이자. 손빨래에는 전기가 한 톨도 안 들어간다. 이렇게 모든 것에서 단계를 줄일 수 있다면, 전기로부터 독립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너무나 전기 의존적이니까.
답은 쉽지만 손빨래가 쉬웠으면 왜 세탁기라는 게 나왔겠는가. 가장 힘든 건 빨래를 꽉 짜는 과정이다. 그때부터 전기를 적게 쓰는 빨래탈수기, 아예 전기를 쓰지 않는 채소탈수기 등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늘 부딪히는 문제는 ‘이것을 만드는 데 드는 전기와 재료만큼 내가 전기를 아낄 수 있을까?’. 답은 회의적이었기에 대안 없이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의외로 쉬웠다. 많이 더러워지기 전에 비눗물에 담갔다가 조물조물, 눈에 띌 때마다 한 번씩 헹구기, 물 뚝뚝 떨어지는 그대로 욕조 위에 널어놓았다가 대충 물기가 빠지면 빨래건조대로. 이불처럼 큰 빨래는 세탁기의 힘을 빌리지만 무리가 아닐까 싶던 청바지까지 무난하게 빨아서 널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 손빨래까지 해야겠느냐고, 그렇게 집안 구성원의 노동력을 착취해 알량한 양심을 만족시켜야 하겠느냐고. 그깟 세탁기 몇 번 안 돌리는 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다고 원전 문제를 개인의 실천 차원으로 끌어내리냐고. 개인의 전기 절약으로 정부의 에너지 관리 실패를 덮으려는 의도에 놀아나는 것 아니냐고. 틀린 말은 없다. 대세에는 절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손을 담가 직접 조물거려야 하는 빨랫감들은 늘 내게 말을 건다. 경남 밀양을 잊지 말라고.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가 얼마나 전기에 매여 살고 있는지 잊지 말라고. 생각을 멈추지 말라고. 그리하여 결국, 남을 착취하고 나를 지배하는 전기에서 독립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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