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남호 ‘정주영 방조제’ 허문다’
2024년 4월 셋째 주에 출고된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입니다. 비슷한 시기 부남호 재자연화(역간척) 사업이 곧 진행된다는 취지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제목들만 보면 곧 재자연화 사업이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반가웠습니다. <한겨레21>은 2024년 3월 창간기념호(제1504~1505호)로 재자연화 의제를 제시하면서 국내 재자연화가 시급한 사례로 부남호(‘파도파도 오니 천지...파묘보다 무서운 부남호 수질’) 를 다룬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하나씩 들여다보니 애매합니다. 명확히 언제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진짜 부남호 재자연화가 이뤄지는 걸까요. 비슷한 시기에 여러 언론사에서 보도가 나온 건 4월16일 충남도에서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입니다. 보도자료 제목은 ‘부남호 역간척, 국가사업으로 띄운다’였습니다. 여러 내용이 담겼지만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충남도에서 진행해온 ‘연안 담수호 생태복원 사업’이 올해 처음으로 정부 예산에 5억원이 반영돼 국가 차원에서 추진될 예정이라는 것. 둘째, 충남도에선 부남호 등을 국가사업 대상에 반영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언론이 전자를 앞세워 부남호 재자연화 사업이 곧 진행될 것처럼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연안 담수호 생태복원 사업 예산 5억원이 반영된 것은 2023년 말입니다. 생태복원 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도 2024년 상반기 예정돼 있었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물어보니 역시나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합니다. 5억원짜리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은 해수부에서 이미 발주해놨습니다. 타당성 조사는 6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게다가 이 사업은 부남호만을 위한 사업도 아닙니다. 전국 연안 담수호를 대상으로 어떤 담수호가 생태복원 사업을 하면 좋을지 찾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해수부는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시범사업을 진행할 두 곳을 선정할 계획입니다.
그럼 충남도의 발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번 발표에서 새로운 내용은 충남도가 정부의 타당성 조사에 맞춰 대응 연구를 충남연구원에 맡겼다는 것뿐입니다. 충남도 쪽은 4월1일 충남연구원에서 연구에 착수했고 4월12일 착수보고회를 열었다고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정부의 연안 담수호 생태복원 시범사업에 부남호와 충남의 다른 담수호가 선정될 수 있도록 정부의 타당성 조사에 맞춰 자료를 작성하는 등 준비를 잘 해보겠다는 의미입니다. 당장 부남호 재자연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독자분들은 맥이 빠질 겁니다.
그렇다고 이번 발표에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충남도는 2015년부터 재자연화를 추진해왔습니다. 현재 부남호와 천수만을 가로막는 방조제에 터널을 뚫어 조금씩 부남호 안쪽의 물을 빼내고 해수가 들어오게 하는 방안입니다. 쉽게 진행되지 못했던 이유는 예산도 많이 드는데다 부남호의 관리 권한이 여러 부처에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담수호는 기본적으로 농어촌공사가 관리합니다. 방조제 너머 바다는 해수부 소관입니다. 또 농림부와 환경부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부남호는 다른 담수호와 달리 간척사업자인 현대에 관리 권한이 있습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간 충남도 차원에서 진행된 연구나 용역은 많았지만, 정부에서 진행된 적은 없습니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연안 담수호 생태복원 사업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충남도에서 강조하는 부분도 이 지점입니다. “다양한 부처가 얽혀 있다 보니까 어려운 사업이고, 그동안 코로나19 문제도 있었잖아요. 도 차원에서 국가 단위의 사업을 해야 한다고 중앙부처에 계속 건의하던 상황이었어요. 그간 충남도에서 자체 예산을 들여 연구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해수부는 중앙부처가 직접 타당성 조사를 해야 국가 과제로 수립할 수 있다면서 미뤄왔었거든요.”(윤종주 충남연구원 기후변화대응연구센터장)
결국 부남호 재자연화 사업을 제대로 착수하려면 올해 진행되는 정부의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시범사업으로 지정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넘으면 시범사업 예산을 받아야 합니다. 충남도에선 1단계 투입 사업비로 1134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부남호 관리 주체인 현대와 논의도 진행해야 하고 농어촌공사 입장도 들어야 합니다. 부남호 바깥에서 어업을 하는 어민들의 목소리도 들어야죠. <한겨레21>이 2024년 3월 부남호 인근 어촌계를 찾았을 때 어민들은 재자연화를 찬성하면서도 “반드시 보상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충남도 관계자는 “저희가 진행한 연구 결과로는 하루에 (부남호 안쪽 담수를) 2만t 정도만 빼내면 천수만 영향이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모니터링을 거쳐 피해가 있다고 하면 당연히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부남호 재자연화 사업은 어떻게 될까요. 양승조 전 지사 때부터 부남호 역간척 계획의 민간 자문위원장을 맡았고, 이번 착수보고회에도 참여한 전승수 전남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복원 방법과 해수 유통 방안, 이에 따른 농업용수 확보 방법도 있어요. 일단 시작한다고 하면 여러 방안을 접목하면서 자문해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하는지 안 하는지만 논의하고 있어요. (부남호뿐 아니라)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하구호가 200개 넘어요. 이 중에는 담수라는 용도로 쓰지 않거나 아주 적은 양의 담수만 쓰는 곳도 많거든요. 농어촌공사나 농림부도 ‘농업용이니 안 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해요.” 일단 진행 여부만 결정되면,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방안은 있다는 말입니다.
재자연화 사업은 단순히 자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역과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겨레21>이 찾았던 독일과 네덜란드의 재자연화 사업(‘사람이 물러서니 자연이 밀려왔다’)도 결국 주민들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하구호 주변이 가장 미래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관광, 휴식 도시로서의 공간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거든요. 경관 가치만 잘 복원돼도 새로운 수변 경관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새로운 가치가 생기는 거예요.”(전승수 교수)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21토크ㅡ<한겨레21> 표지 기사의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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