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구구, 먼저 심심한 위로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가끔 혼자 가는데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그런데 방해를 받으셨군요.
기쁨님도 그러셨겠지만 저도 일단 주변에 두루 물었습니다. 대부분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더군요. 그래도 캐물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빈 곳에 꽂는다는군요. 즉 먼저 꽂는 자가 임자라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점’의 논리가 그 세계에서도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잘 생각해보라고, 어느 쪽에 주로 꽂느냐 물었더니 주로 오른쪽이라네요. 다들 오른손잡이였습니다. 오른손이 편해서 오른손으로 음료수를 마시니 오른쪽에 꽂게 된다는 거지요. 당연히 왼손잡이들은 왼쪽이 편하겠지요? 아마 기쁨님의 오른쪽 남자는 왼손잡이이거나, 아니면 기쁨님의 관심을 살짝 끌어보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물음에 머뭇거림 없이 ‘오른쪽’이라고 답한 사람은 직업상 혼자 영화를 자주 보는 영화 프로듀서 김현정씨였습니다. “그쪽이 편하다”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둥그런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때 어느 쪽 물이 내 잔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요. 그 세계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오른쪽입니다.
혹시 이런 일 때문에 실제 다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입구에 좌석의 어느 쪽 팔걸이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을 붙이면 어떨까 싶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을 확보하고 있다는 CGV 쪽에 물었습니다. 홍보팀의 이상규 팀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직업상 기자들의 전화가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많기 때문인지,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제 질문에 긴장이 풀리면서 약간 허탈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하,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도 비슷한 질문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희가 어떤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그 문제 때문에 항의가 많거나 고객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면 기준을 정하고 안내를 할 텐데 알아서들 잘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렇습니다. 성숙한 시민들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문제로 보는 것 같습니다. 수십 년간 왼쪽으로 걸으라고 했다가 알고 보니 오른쪽이 맞다는 식으로 결정하고 ‘경제적 효과’가 얼마이니 법석을 떨기보다는, 자신만큼이나 남을 귀하게 여기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거나 기쁨님이 음료수 꽂을 자리가 없을 때는 이렇게 얘기해보세요.
“크게 불편하시지 않다면 이쪽은 제 음료수를 놓고 싶은데 양보해주시면 안 될까요?”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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