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 낙서, 왜 애꾸눈 철수와 수염 난 영희인가.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질문은 두 가지로 쪼개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소년·소녀는 왜, 얼마나 교과서에 낙서를 하는가, 둘째 낙서는 왜 애꾸눈 철수와 수염 난 영희인가입니다.
일단 전제가 맞는지 확인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자고 나면 자라는 소년의 몸통처럼 몽둥이도 한해 한해 굵어지던 엄혹한 시대에도, 교과서 안 위인을 영구로 둔갑시키고 해맑던 영희에게 때를 묻혔던 것~ 같긴 합니다. 다만 그게 대개 애꾸와 수염이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유용한 단서가 있었습니다. 웹에서 검색된 일본 TV 자료입니다. 중학생 설문조사 결과, 교과서에 새겨진 낙서 ‘베스트 10’이 추려집니다. 가상해보건대, 인자한 달마상이 이렇게 바뀝니다. (어젯밤 무슨 일로?) 코피 흘리는 달마가 6위(334명), 참 속 좁아 보이는 일자눈썹 달마가 5위(362명), (그때 동쪽으로 간 까닭이 미장원 때문이라는 양) 파마 곱게 올려 새 헤어스타일 선뵌 달마가 4위(405명)입니다. 1위는 말풍선(1121명), 3위는 선글라스(531명)였습니다. 미스코리아대회든 뭐든, 대개 호명도 안 돼 두 번 우는 2위는 뭘까요. 다시 예로 들자면, 덥수룩하게 수염 난 달마입니다. 흉터는 몇 위냐고요? 코피 달마부터 수염 달마까지 안 가리고 그어져 있었습니다.
전제가 대략 맞다 치고 분석 들어갑니다. 또 기억을 추궁합니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봄, 선생님이 횡단보도를 무단으로 건너던 친구의 덜미를 잡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하느냐”며 애틋한 사랑으로 귀싸대기를 날려주십니다. 친구는 울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교과서는 풍자가 넘쳐 만화책인 양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변소에서도 그가 쓴 근육이 괄약근만은 아니었다는 걸 압니다. 우린 모두 감시를 피해 음습한 ‘망가’의 세계가 그리웠고, 자고 나면 똥이 마려웠으니까요. 자고 나면 그 선생님 귀도, 낯도 간지러웠을 겁니다.
미술치료 전문 주리애 전 서울디지털대 교수(상담심리학부)는 “기본적으로 공격성에서 기인한다”며 “좌절에서든 현실이 답답해서든 분노를 해소하려는 욕구로 누구나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해소 채널’인데, 성인은 다양한 반면 교실에 갇혀 교사와 부모의 위계에 눌린 학생들에겐 낙서 따위로 제한된다는 것이죠. “후환이 차단된 교과서 인물을 상대로 한 대리 행동”이라 하니, 한마디로 ‘살아보겠다’는 겁니다.
특히 교과서 자체가 이들에겐 족쇄의 상징입니다. ‘기술 가정’이 ‘가출한 가정쌤’ 내지 ‘뛰어난 밤기술=가정의 평화’가 됩니다. ‘가출 결정’도 있습니다. 살아보겠다는 거라 말씀드렸죠.
서울미술치료연구소 전순영 소장은 “2차 성징기 남학생들은 수염이나 여성의 가슴을 강조하고, 지퍼 부위를 두둑하게 그리면서 정체감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학생은 상대적으로 미소년과 공주를 선호하며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하죠.
“실사례 연구를 해보지 않아 일반화하기가 참 어렵다”며 4명의 심리학 교수님은 서로 다른 전문가에게 절 떠넘기셨습니다. 교과서 속에서 선생님께 인사 잘하고 만나면 반갑다고 웃기만 하는 철수·영희가 잠시 졸았다고 구박받는 이의 낙서하는 심정을 알아줄 리 없습니다. 한두 가지로 정리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점심 바로 전 국사 시간, 한 친구도 교과 제목을 뜯어고칩니다. ‘순대국밥사줘요’. 모두 살겠다, 본능대로 움직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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