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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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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가 싸우지 말고 시장과 싸워라

화합이라는 사회적 자본 만들어 기업 회생의 전기 마련해야
등록 2009-07-16 16:07 수정 2020-05-03 04:25

선진국일수록 직업의 수가 많아진다. 이유는 2가지이다. 첫째는 직업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세분화된 것을 통합해주는 조정자(coordinator)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즉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나누어야 하고, 나눈 만큼 합치기도 열심히 해야 한다. 세상을 나누는 과정을 ‘지성적 접근’이라 하고, 세상을 통합하는 과정을 ‘영성적 접근’이라 한다. 개미를 삼등분하면,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 있게 ‘머리·가슴·배’라고 한다. 지성적 접근이다. 그런데 실제로 머리와 가슴을 나누면 죽어버린다. 그래서 개미를 삼등분하면 ‘죽·는·다’가 맞다. 영성적 접근이다. 영성적 접근이란 나누어진 세상을 통합해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누는 것은 죽이는 것이며, 합하는 것은 살리는 것이다. 기업에서 부서 간 사이가 나빠지면 그 회사는 망하기 쉽다. 남자와 여자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1등과 2등이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사는 사회가 영성적 사회이다. 패트리셔 애버딘은 에서 영성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7월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에 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7월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에 정부가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노조 분노 이해하지만 시간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분해는 하고 조립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위해 융합·통섭·영성이 강조되고 있다. 영성적 사회를 위해서는 싸움을 말리는 조정자가 많아야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조정자가 많아지는 이유이다.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나라들은 세분화에는 성공했지만 통합하고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쌍용자동차가 지금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물에 빠진 쌍용차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노사 간 싸움을 말려서 노사가 힘을 합쳐 시장과 싸우도록 해야 한다. 20만 대 이상의 생산 능력에 3만여 대를 판매해 가동률이 20%도 안 되는 상황에서 누구를 탓해야 할까? 1970년대 후진국이던 시절 우리 기업에는 노사 구분도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노사가 나누어지고 싸우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 쌍용차 노사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화합되지 못하고 싸우기만 한다면 나누어진 개미는 죽을 수밖에 없다.

쌍용차의 사용자 쪽인 상하이차의 경영 활동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쉬움이 많다. 그런 만큼 노조원의 분노의 감정에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쌍용차는 법원에 9월15일까지 구조조정 계획과 추가 운영자금 마련 방안 등을 담은 최종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이 시간이 지나면 쌍용차의 회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조는 정부의 개입을 원하고 있지만 개입은 곧 책임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자생적 생존 능력을 갖지 못한 기업에 지원을 하게 되면 곧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이러한 게임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국민들은 원치 않고 있어서 이 또한 쉽지 않다.

쌍용차 노사는 이제 감정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감정이 폭발한다. 왜 나만 이렇게 당해야 하나 하면서 세상을 탓하고 남을 원망한다. 닫힌 사고는 조직을 몰락시키고, 열린 사고는 장수하게 만든다. 중국 최전성기의 청나라 건륭 황제는 일생 동안 10차례에 걸쳐 대전쟁을 일으키고 모두 승리했다. 그런데 이러한 닫힌 사고가 청나라를 몰락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반면 다른 나라들이 다 문을 만들 때 길을 닦았던 로마의 열린 사고는 로마를 천년 장수의 국가로 만들었다.

자생적 생존력 보여주는 게 중요

외부의 시장 환경은 쌍용차에 부정적이다. 시장이 좋아하는 연비 좋은 차들이 없고 대형차와 스포츠실용차(SUV)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내부가 싸우고 있으면 촛불은 꺼질 수밖에 없다. 노사 간 타협도 그냥 현재 상황을 덮어두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획기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아니면 회생되기 어렵다. 지금은 어렵지만 3~4년 뒤면 자생적 생존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쌍용차는 물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건물과 시설과 같은 물리적 자본(physical capital)이 핵심 자산이 되지만, 점차 인적 자본(human capital)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이 만나서 싸우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면 사람 간 화합이 중요해진다. 이것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다시 한번 쌍용차는 노사 간 사회적 자본을 만들고 획기적인 기업 회생의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정 싸우고 싶으면 노사가 싸우지 말고 시장과 싸워라. 그러면 시장 경쟁력이 된다. 우리 국민과 싸우지 말고 외국과 싸워라. 그러면 글로벌 경쟁력이 된다. 도쿄대학의 불탄 야스다 강당은 일본 학생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쌍용차의 노사 대타협과 희망의 소식을 기대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희망의 불씨를 키워가기를 기대한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부

[쌍용차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자동차 산업 재편 전체 틀에서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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