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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핫라인’으로 어떻게 통화하죠?

등록 2009-05-27 17:41 수정 2020-05-03 04:25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핫라인’으로 어떻게 통화하죠? 사진 연합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핫라인’으로 어떻게 통화하죠? 사진 연합

정치외교학을 전공해 ‘핫라인’의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합니다. ‘북한과 핫라인이 개설됐다’고 하더라도 국가 정상이 직접 통화하지는 않을 것이고, 외교·실무적 절차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임석재)

→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찾아봤습니다. ‘핫라인’의 사전적 의미, 국립국어원 을 펼쳐보니 두 가지 뜻이 나와 있네요. ‘첫째, 미국의 백악관과 러시아의 크렘린 사이에 개설한 직통전화. 사고나 오해로 인한 우발적인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1963년 8월에 개통했다. 둘째, 긴급 비상용으로 쓰는 직통전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알아볼까요?

1962년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맞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진 거죠. 당시 미국 쪽에선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협상의 뜻을 담아 보낸 3천 단어짜리 ‘비화문’(암호로 처리된 전문)을 해석하는 데 꼬박 12시간이나 걸렸다네요. 해서 미-소 양국은 이듬해 6월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직접 소통라인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른바 ‘붉은 전화’로 불리는 핫라인 설치에 나서게 됩니다.

이제 ‘긴급 비상용’으로 넘어가볼까요? ‘남북 핫라인’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도 써 봤습니다. ‘회합통신’? 아니~죠! 남북회담 때 ‘임시회선’이 가설되거든요. 전화기? 시꺼멓고, 다이얼도 없습니다. 번호? 누룰 필요 없습니다. 수화기를 들면 상대편에 자동으로 신호가 갑니다. 예전엔 통화를 시도하면 전화기에 불도 깜빡깜빡 들어왔죠. 남과 북이 직통전화를 처음 가설한 것은 1971년 9월22일(사진)입니다. 판문점의 남쪽 자유의 집과 북쪽 판문각을 전화선으로 연결한 거죠. 소리를 크게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인데, 그 사이를 ‘연결’하는 데 20년여가 걸린 겁니다.

이후 이 직통전화는 남과 북이 정치·군사·경제 등 각종 당국 간 문제를 연락할 때 요긴하게 쓰이게 됩니다. 이듬해인 19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란 통일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도 한몫을 단단히 했죠. 박정희 정권 때 이후락 중앙정보국 부장과 북쪽 김영주 통일전선부 부장 사이에도 ‘핫라인’이 가동됐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장세동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과 박철언 안기부장특보가 북쪽의 허담 대남비서와 한시해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대화하는 데 사용했던 ‘88라인’도 유명하지요. 어떻게 통화했냐구요? 그냥 수화기 들면 된다니까~!

김대중 정권 때도, 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핫라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상 간 대화가 오갔다는 얘긴 나온 게 없지만, ‘수뇌부급’들의 물밑 대화는 제법 빈번했던 것이죠. 이 밖에도 항공관제를 위한 대구∼평양 관제소 회선, 해상 통행을 위해 남북 해사 당국 간 회선, 개성공단·금강산 출입을 위한 회선 등도 여럿 개설돼 있습니다. 정리해보죠. 통화? 전화기 들면 됩니다. ‘당번’이 그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유지? 매일 아침 남북의 ‘당번’이 서로 전화해 확인합니다. 그런데….

요즘 남북 직통전화, ‘불통’입니다. ‘이쪽’에서 아무리 수화기 들어도, ‘저쪽’에서 응답이 없습니다. 고장이냐구요? 아니~죠! 지난해 11월12일 북쪽이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부 폐쇄와 함께 직통전화도 ‘단절’시켰습니다. ‘선’을 잘라버린 건 아닙니다. 전화기도 멀쩡합니다. 어느 북한전문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기계는 있으되, 응답이 없다”고. ‘핫라인’의 통화품질은 남북관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거든요.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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