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15명 가운데 단 1명만이 범죄사실을 인정했다. 1등 기관사 손아무개(57)씨였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의 심리로 지난 6월17일 열린 세월호 참사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손씨의 변호인은 말했다. “법에 따라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 반면 3등 기관사 이아무개(25)씨, 조기수 이아무개(56)·박아무개(59)씨 등은 “세월호 탈출은 긴급피난행위”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선장 이준석(69)씨 등 선원 11명이 내세운 논리와 똑같았다.
변명 늘어놓는 선원 보는 것 “고문”“첫 재판 방청하신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 손 좀 들어달라.” 오전 10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재판장이 물었다. 10여 명이 손을 들었다. 방청석(103석)은 가득 찼지만 첫 공판준비기일을 참관했던 가족들은 이날 대부분 다시 오지 않았다. 범죄사실을 부인하며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선장과 선원을 지켜보는 게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남 진도에서 온 실종자 가족들이 이렇게 호소했다. “오늘로 딸을 잃은 지 63일째다. 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이 돌아오지도 못했다. 이제 못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슬프다.”(단원고 2학년3반 황아무개양 엄마) “왜 그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상황에서 우리 가족(승객)을 구해내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 15명이 법정에 들어왔다. 첫 공판준비기일에서처럼 희생자 가족들이 고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살이 토실토실하네”라고 읊조렸다. 재판장은 지난 재판에 이어 나머지 피고인 4명도 공소사실을 부인하냐고 물었다. 기관사 손씨의 변호인이 “혐의를 모두 시인한다”고 말했다. 법정이 순간 술렁였다. 손씨는 유일하게 국선이 아닌 사선 변호인을 선임했다.
[기관사 손씨의 변호인] “수난구호법이나 (세월호) 운항 규정에 따라 필요한 구호 조치를 못한 것을 ‘선장의 지시를 받지 못해서 무죄’라거나 ‘사실상 구조 활동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법에 따라 합당한 처벌을 받고자 한다. 당시 해경이 출동해 많은 승객을 구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인명 피해가 커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죄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양형에서 이런 점을 참작해달라. 이번 재판은 무리한 개조로 복원성을 상실한 세월호가 운항 중 침몰한 것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선원들의 무능함을 심판하는 자리다. 피고인들은 각자 행위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탐욕에 가득 차 무리한 개조와 과적으로 세월호를 시한폭탄으로 만들고 결국 침몰에 이르게 한 기업과 이를 방조한 관련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지길 희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3등 기관사 이씨와 조기수 2명의 국선 변호인은 다시 혐의를 부인했다. “바닷물이 3층 기관실, 갑판까지 차오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좌현 갑판 출입문 쪽에서 약 30분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가 해경 123정이 접근해 퇴선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긴급피난행위였다. 피고인들의 구조 활동 포기로 공소장에서처럼 많은 사망자(281명)가 발생했는지도 의문이다.”
“피고인 졸고 있다” “뉘우침도 없다”검찰은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1900여 개의 증거목록을 제출한 데 이어 이날 600여 개를 추가로 냈다. 수사기록은 영상녹화물, 음성파일 등을 포함해 2500여 개로 늘었다. 피고인들은 검찰의 증거를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해경과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에 검찰 쪽은 단원고 생존 학생·교사, 일반인 생존자, 승무원, 해양전문가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장은 “세월호의 각 층별·선실별로 탑승했던 생존자들을 선정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 일정은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수업이 없는 7월 말~8월 초 2주간으로 계획했다. 6월30일에는 재판부가 세월호와 ‘쌍둥이 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에 대한 현장검증을 3시간20분간 실시하기로 했다. 이날 현장검증에 검찰과 피고인, 변호인은 물론 피해자 가족도 몇몇 동행하기로 했다.
변호인 쪽은 해경과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아무개씨, 청해진해운 직원 등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특히 세월호에 탔던 필리핀인 가수 부부가 증인석에 앉는다. 이 부부는 사고 당일인 지난 4월16일 아침 8시52분 세월호가 병풍도 앞바다에서 멈춘 순간부터 오전 9시46분 출동한 해경 123정에 구조될 때까지 조타실에 있던 목격자다. 조타실 바로 뒤 침실에 있다가 선체가 30도 정도 기울자 조타실로 가 54분 동안 조타실 안의 상황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변호인 쪽은 “선원들의 (퇴선 명령, 변침)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서 조타실에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증인 신청 이유를 밝혔다.
증거·증인 채택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몇 시간째 반복됐다. 피고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가 눈을 감기도 했다. 그때 방청석에서 “(피고인이) 졸고 있다”고 소리쳤다. “뉘우침도 없고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고인들) 세워놓고 (재판)하면 안 되나?” “선장 얼굴을 똑똑히 못 봤다. 이 앞에 무릎 꿇게 해라. 왜 앉혀놓느냐?” 재판장은 “피고인의 법정 자리가 법률에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들에게는 “법정에 들어올 때 재판부에 목례 안 해도 된다. 하려면 방청석 쪽을 향하라”고 당부했다.
희생자 가족들, 직접 반박“선장, 선원 등이 퇴선 명령을 했다” “세월호가 그렇게 급격히 침몰할 줄 몰랐다” “전문적 구호 장비와 지식을 갖춘 해경이 (승객을) 구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변호인들이 계속 주장하자 희생자 가족들이 직접 반박했다. 단원고 2학년9반 최아무개양 엄마의 말이다. “그렇다면 왜 선원들은 갑판 위에 다 올라가 있었나. 밖으로 나오도록 지도만 했어도 아이들은 다 살았다. 이런 변호를 용납할 수 없다.” 단원고 2학년3반 박아무개양 엄마도 말했다. “우리 아이와 10시11분에 5분간 통화했다. 처음에 엄마 부를 때는 울지 않았는데,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이가 울며 얘기했다. ‘엄마 울지 마. 금방 구조돼 나갈게.’ 그렇게 통화가 끊기고 6일 만에 물속에서 올라왔다. 휴대전화 동영상이 나왔다. 선원들은 9시28분 (해경과) 교신할 때 방송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동영상에는) 아이들이 방송 듣고 그런다. ‘이제 다 뛰어내리는 거야. 우리 살아서 보자.’ 이게 9시40분이 넘었다. 그 시각에 이준석씨 등은 이미 (세월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왜 빨리 한두 명이라도 나가라고,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기들만 나왔는지 꼭 밝혀달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오후 4시께 끝났다. 재판부는 6월24일 오전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연 뒤, 이날 오후부터 공식 재판을 시작한다. 첫 증거로 세월호 사고 당시 영상물(1시간 분량)을 조사할 계획이다.
광주=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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