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대구 중구 동성로에 설치된 정당의 펼침막. 장필수 기자
“정치활동을 하는 게 부담스럽다.”
민주·진보 정당에 소속돼 대구 지역에서 직업정치인으로 살아가는 5명 가운데 4명이 이렇게 답했다. 2026년 6월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의 지리멸렬함과 이재명 대통령의 안정된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여권 우위의 선거 구도가 자리 잡으면서 중앙 언론들은 앞다퉈 ‘보수의 심장이 흔들린다’ 등의 제목을 단 대구 정치, 선거 분석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관되게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선돼온 대구에 변화가 예상된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대구의 풀뿌리 정치인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한겨레21은 2026년 3월9일부터 12일까지 주·객관식 문항이 혼합된 온라인 설문(총 35문항) 방식으로 ‘대구 지역 현역 기초의원 및 출마 예정자’를 대상으로 ‘정치 상황 인식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대상은 민주·진보 정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에 소속된 기초의원 및 출마 예정자 30명이었다.
‘대구에서 민주·진보 정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부담감’을 묻는 말에 응답자의 20%는 ‘부담감이 크다’고 답했고, 60%는 ‘큰 편이다’라고 했다. ‘부담이 없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불리함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복수응답)은 ‘보수적인 지역 문화’(70%)와 ‘유권자들의 투표 관성’(63.3%)이었다. 설문에 응한 한 기초의원은 “대구 정치에는 진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경쟁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설문 응답자는 “선거를 뛰기도 전에, 유권자를 설득해보기도 전에 왜 그 정당이냐는 시선을 먼저 마주한다”고 죄다 토로했다. 대구는 시장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단 한 차례(무소속)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승리했다. 이 반복된 결과는 단순한 정치 성향을 넘어 집단적 정체성으로 굳어졌고, ‘경쟁 이전에 배제’하는 풍토로 확장됐다는 것이 응답자 다수의 진단이었다.
변화를 선택했던 적이 없는 유권자는 대구 정치의 굳은 단면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여전히 “대구는 집단 보수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바라봤다. 한 설문 응답자는 대구 유권자의 투표 관성에 대해 “타 지역의 보수성이 개인의 이익이나 안보에 집중한다면, 대구의 보수성은 ‘여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식의 공동체적 책임의식”이라고 규정했다.
이렇듯 수십 년에 걸쳐 국민의힘 계열 보수와 민주·진보 정당이 8 대 2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도 속에서 대구 지역 민주·진보 정치인들이 체감하는 대구 정치의 진짜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 외에는 아예 보이지 않고, 경쟁도 되지 않는 운동장의 구조 자체였다. 한 출마 예정자는 “인물이나 정책보다는 당 자체가 지역 권력 구도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단일화되며 다양한 세대나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새로운 인물들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이는 지역을 설계할 인물들이 중앙(서울)이나 타지로 유출되는 정치적 한계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대구 지역 민주·진보 정당 정치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은 누굴까. 설문에 응답한 이들은 압도적으로 ‘20대 청년’을, 그중에서도 ‘남성’을 더 부담스러운 존재로 꼽았다. 20대가 ‘호의적’이라는 응답은 6.7%에 불과했고, ‘호의적이지 않다’는 응답은 66.7%에 달했다. 남성 유권자가 ‘호의적’이란 응답 역시 26.7%에 그쳤다. 대구의 20대 청년과 남성이 유독 민주·진보 정치에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렸다. “무조건”이란 응답부터 “박정희 향수” “보수 정당과의 일체감” “보수 정치와의 일체감” 등 익숙한 진단도 있었지만, 다른 층위에서는 “변화 가능성이 상실되며 정치로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란 좌절감”이 깊다는 응답도 있었다. “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된 상태”에서, “길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은 죄다 국민의힘의 입장만 대변하는 현실”에서, “정치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으니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 청년은 변화할 가능성이 없을까. 응답자들은 결국 ‘취업’ ‘지역 소외’ ‘불평등’ 문제가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과 어떤 맥락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3.3%는 ‘취업’을 1위로 꼽았고, ‘비수도권 소외’(33.3%), ‘불평등’(33.3%)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들은 ‘정체’를 보수에 잠식돼 경쟁조차 없는 대구의 오늘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꼽았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일하지 않아도 당선”되는 정치 구조가 현실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구는 2024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고, 2025년에는 국가통계포털(KOSIS) 기준으로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20대 순유출을 기록했다. 대구는 도시 기준으론 가장 낙후된 도시이자 전국 기준으로 청년 유출 1위 지역이다. 이에 대해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대구에서 사는 강수영 변호사는 “서울과 경기도 등의 주거, 교통, 보육 등 일상 정책을 대구와 비교해주면 대구 사람들은 아예 믿질 않는다”며 “대구는 선도적인 정치로 정책 영역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아직 체감해보지 못한 도시이고 그 결과 낙후되는 도시다. 정치적 선택이 가치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대구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 응답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응답자들 역시 대구를 “10년 이상 후퇴한 도시”로 “정체와 퇴보가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발전이 아예 멈춘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런 경제적 상황이 청년의 보수성 혹은 정치적 냉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 기초의원은 “어른들이야 대통령을 낳았던 패권 도시,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보수성을 유지하지만 청년들은 이제 그 방식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경제 침체와 청년 유출 등으로 대구는 “더 보수화되거나 아니면 삼류 도시로 전락할 것”이란 비관적 분석까지 내놓았다.
이번 지방선거는 윤석열의 내란 이후 첫 전국 동시선거이자,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원칙 없는 표류와 번복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열린다. 대구 지역 공천 역시 이진숙 대구시장 예비후보 낙점설 갈등에 이어 주호영, 이진숙 컷오프에 이르기까지 ‘이정현표 공천 독주’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서울과 부산보다 오히려 대구를 주목해야 한다는 정치 분석 기사들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출마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대변동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은 이를 어찌 생각할까.
이번 선거에 대해 응답자의 70%가 ‘보수당 압도’ 결과를 예측했고, 균형을 이룰 것이란 전망은 16.7%에 그쳤다. 민주·진보 진영의 압도나 우세를 전망한 이는 13.3%에 불과했다. 국무총리를 지내 대선 주자로까지 꼽히는 김부겸이라는 강력한 정치인이 있음에도, 설령 출마해 당선되더라도 대구 정치 지형의 근본이 흔들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이들은 예외적이었던 2016년 총선 김부겸의 승리가 ‘개인의 역량’(66.7%)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53.3%)에 기인한 돌발적 사건이라 보고 있었다. 소속 정당의 영향력 때문에 당선됐다는 응답은 3.3%로 극소수였다. 향후 김부겸 같은 사례가 더 나올 것이냐는 물음에도 13.3%는 ‘매우 어렵다’, 43.3%는 ‘어렵다’고 답해 부정 전망이 56.6%에 달했다.
그렇다면 대구 정치의 내부자들은 어디서 대구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을까. 냉담한 내부자들은 그래도 ‘중앙당 전략과 메시지 강화’(60%), ‘인력 및 재정 지원’(56.7%) 등이 소속 정당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짚으며, ‘(지역 의원) 재임 기간 또는 최근 4년간 민주·진보 정당에 대한 인식’이 ‘다소 개선’(73.3%)됐거나 ‘개선’(13.3%)됐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대구 정치의 전체를 보여주진 못하겠지만, 대구 정치의 중심에서 비켜서 있되 가장 뜨겁게 대구 정치의 변화를 열망하는 내부자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이 말하는 대구 정치의 문제는 단순한 보수 성향이 아니다. 기억과 정체성으로 유지되는 일체감의 정치, 그 강력한 일체감에 압살된 경쟁이 사라진 구조,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발전 정체와 청년 세대의 냉담이었다.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며 선거 때마다 ‘자유’와 ‘민주’가 가장 많이 외쳐지는 도시다. 하지만 여전히 정작 필요한 것이 자유와 민주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인 ‘경쟁’이란 점은 대구 정치의 낙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탄핵 이후 ‘뉴이재명’이라 불리는 민주당의 중도 확장 전략 속에 대구 정치는 새로운 응답을 내놓을까. 국민의힘이 대구에 누굴 공천하더라도 당선되는 게 아닌 지역이 될 때, 진정한 보수 재건이 시작되지 않을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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