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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응우옌티탄과 김형수, 기필코 이기기를 응원합니다

등록 2025-06-19 22:11 수정 2025-06-23 15:37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65살 응우옌티탄(왼쪽)과 68살 응우옌티탄이 2025년 6월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를 찾아 한겨레21부 팻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한겨레21은 1999년 5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최초 보도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65살 응우옌티탄(왼쪽)과 68살 응우옌티탄이 2025년 6월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를 찾아 한겨레21부 팻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한겨레21은 1999년 5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최초 보도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두 명의 응우옌티탄이 있다. 68살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24일 베트남 하미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가족 다섯 명이 살해됐다. 응우옌티탄은 살아남았지만, 왼쪽 청력을 잃었고 옆구리에 파편상을 입었다. 65살 응우옌티탄은 같은 해 2월12일 퐁니마을에서 역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 네 명이 살해됐다. 응우옌티탄은 복부에 총상을 입고 가까스로 생존했다.

두 명의 응우옌티탄은 그날 이후 57년 동안 싸우고 있다. 68살 응우옌티탄은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하미 학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발생한 사건”이라며 신청을 각하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진실화해위의 손을 들어줬다. 65살 응우옌티탄은 2020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정작 한국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두 명의 응우옌티탄은 2025년 6월18일 한국에 왔다. 새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기 위해서다.

97일 동안 원청인 한화오션 서울 본사 앞에 있는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한 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2025년 6월19일 오후 이곳 아래서 열린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97일 동안 원청인 한화오션 서울 본사 앞에 있는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한 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2025년 6월19일 오후 이곳 아래서 열린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형수는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다. 조선소는 김형수 같은 하청 노동자 비율이 56%(2021년 기준)에 이르러 원청 노동자보다 많다. 경기 상황에 따라 수주 물량이 급격히 달라지기 때문이라는데, 그걸 인정해도 원청 회사는 호황일 때는 임원과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성과급·상여금 잔치’를 벌이면서 불황일 때는 하청 노동자부터 쫓아낸다. 하청 노동자들이 이에 저항하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김형수는 2025년 3월15일 30m 높이 고공 철탑에 올랐다. 원청인 한화오션 서울 본사 앞에 있는 철탑이다. 비좁은 곳이라 앉아서 다리를 뻗으면 허벅지 아래가 공중에 뜬다. 그런 곳에서 김형수는 97일 동안 농성했다. 6월19일 하청 노동자 상여금 인상 등을 잠정 합의하고 땅에 내려온 김형수는 약 20m를 걷는 데 5분이나 걸렸다. 97일은 51년 동안 살아온 그에게 걷는 방법을 잊게 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번호 뉴스 큐레이터)

오래된 투쟁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숭고하지만은 않다. 싸우는 사람만큼 절박함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된 투쟁은 관심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점점 더 흐릿해지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는데, 함께 싸우는 사람들끼리 의도치 않게 다투기도 하고 그렇게 지친 이들이 하나둘 떠나가면, 남아서 싸우는 사람은 마음의 병을 얻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오래된 투쟁은 기어이 승리한다. 단지 승리의 전기를 마련할 때까지 싸웠기 때문”이다. (이번호 레드기획)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2025년 6월17일 서울 중구 10·29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7차 위원회 회의를 방청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2025년 6월17일 서울 중구 10·29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7차 위원회 회의를 방청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참사 발생 2년7개월 만인 2025년 6월17일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개시를 마침내 맞이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그렇게 싸워온 사람들이 아닐까. (이번호 뉴스 큐레이터) 두 명의 응우옌티탄과 김형수에게도 그렇게 ‘기어이 승리’하는 미래가 다가오길 한겨레21이 응원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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