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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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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성장’ 만능키라고? 실업·폐업 치트키라면…

‘일자리 감소’ 대응 없이 ‘투자 공약’만 남발…거대 플랫폼 기업과 싸우는 자영업자들도 상생안 요구
등록 2025-05-29 21:05 수정 2025-06-01 08:01
챗지피티(Chat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에이아이(OpenAI)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CSO)가 2025년 5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최형두 선거대책위원회 AI과학정책본부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챗지피티(Chat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에이아이(OpenAI)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CSO)가 2025년 5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최형두 선거대책위원회 AI과학정책본부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희만큼 ‘몸’에 와닿게 인공지능(AI)의 발전을 느끼는 곳이 또 있을까요.”

20년째 금융권 콜센터에서 일해온 김현주 든든한콜센터지부장(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이 2025년 5월27일 말했다. 그는 2023년 말 ‘KB국민은행 간접고용 콜센터 상담사 집단해고 사태’ 때 실직 위기를 맞았던 직장인 중 한 명이다. 당시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에서 케이비(KB)국민은행에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등 정치권과 연대한 투쟁으로 234명이 해고를 면했지만, 동료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공지능 상담 도입은 이제 금융권을 넘어 공공기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영역 확대되는 인공지능 상담 도입

“저희 직군엔 인공지능이 도입된 지 3년 넘었어요. 초기엔 결제금액이 얼마고 언제까지 납입해야 한다는 간단한 내용을 ‘AI 상담사’가 안내했는데, 지금은 저희가 과거 고객들과 상담한 이력을 인공지능이 다 학습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어요. 아직은 AI 상담사가 고객의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지만, 3년 뒤쯤엔 훨씬 더 섬세하게 발전할 거라고 봐요.”

6·3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경제 문제 해결의 만능키처럼 ‘인공지능 산업 진흥’을 외치는 지금, 정작 인공지능과 관련한 시민들의 삶은 어떨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진짜 성장’ 전략으로 ‘AI 3대 강국’에 올라서겠다며 ‘AI 고속도로’ ‘고성능 지피유(GPU·그래픽처리장치) 5만 개 이상 확보’ ‘모두의 AI’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AI 대전환’ ‘개인정보 및 저작권 관련 규제 완화’ ‘AI 민관 혁신펀드 등 100조 이상 투자’를 약속했다.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특별위원장(맨 왼쪽)이 2025년 5월26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챗지피티 개발사인 미국 오픈에이아이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와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특별위원장(맨 왼쪽)이 2025년 5월26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챗지피티 개발사인 미국 오픈에이아이의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와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일자리를 잃을 걱정은 ‘AI 상담사’가 도입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정보기술(IT) 분야 일자리마저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5년 5월13일 구조조정으로 전체 인력의 3%(6천여 명)를 감원하겠다고 밝혔고, 인텔도 2025년 4월 2만2천여 명(전 직원의 20%) 인력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메타는 2025년 2월 전체 인력의 5%(약 3600명)를 해고한 데 이어, 4월에도 수백 명을 해고했다. 기술 분야 해고를 집계하는 레이오프(Layoffs.fyi)는 2025년 기술기업 해고자가 6만2114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금처럼 모두가 인공지능에만 열광하고 이렇게 논의가 이뤄진다면 그 미래는 결국 인류의 멸망이다. 우리는 다 사라질 수도 있다.” 2025년 5월28일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의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생성형 AI 시대, 뉴스 콘텐츠 저작권 보호와 활용 방안’ 간담회에서 최진훈 문화방송(MBC) 법무팀장이 말했다. 발제를 맡은 최승재 세종대 교수(법학)는 “오픈에이아이(OpenAI)와의 소송에서 뉴욕타임스가 던진 질문은 앞으로 우리가 없어져도 괜찮냐는 것”이라며 “향후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일부 주연 배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연 배우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5년 초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55개국 1천 개 이상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를 발표했는데, 기업의 41%가 인공지능 활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2030년까지 고용인력을 감축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보고서(한요셉 연구위원)도 “이르면 2030년에는 현재 형태의 일자리 약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양당 모두 ‘100조 규모 AI 투자 시대’ 공약

그러나 인공지능 도입으로 급변하는 일자리 시장에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논의는 세 차례 이어진 6·3 대선 티브이(TV)토론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는 5월26일 챗지피티(ChatGPT) 개발사 오픈에이아이 경영진을 만나는 등 ‘AI 경제 강국’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양당 모두 일찍이 ‘100조원 규모 AI 투자 시대’를 공약했다.

노동계에선 ‘AI 확산에 따른 고용대책 마련’ 요구가 나오고 있다. 대의원 투표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선정책요구집’을 통해 ‘AI 확산에 따른 노동자 보호 정책 마련’과 ‘AI 대응 직업능력 개발 활성화’를 정치권에 요구했다. 한국노총 임욱영 정책실장은 “AI 스마트공장 도입 등 이미 알게 모르게 일자리 감소는 일어나는 상황”이라며 “(전문가들은) AI 도입으로 단순한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사라지는 일자리에서 아직 일하고 있고 어떻게 전환과정을 거쳐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선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외에서는 이미 관련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매체 포브스는 뉴욕주가 2025년 1월 인공지능 도입으로 인한 대량 해고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기존 ‘근로자 조정 및 재훈련 고지법’(WARN)을 확장해, 기업이 인공지능 도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해고를 할 경우 주정부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더 투명하게 파악하고, 실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취지다.

2025년 5월28일 국회에서는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실과 한국방송협회 주최로 ‘생성형 AI 시대, 뉴스 콘텐츠 저작권 보호와 활용 방안’ 간담회가 열렸다. 임지선 기자

2025년 5월28일 국회에서는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실과 한국방송협회 주최로 ‘생성형 AI 시대, 뉴스 콘텐츠 저작권 보호와 활용 방안’ 간담회가 열렸다. 임지선 기자


윤석열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 아래 시장 장악력을 키워온 ‘빅테크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도 크다.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쿠팡·네이버·배달의민족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의 상생이 힘들어진다고 토로한다. 5월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한국통신판매사업자협회·공정한플랫폼을위한사장협회·라이더유니온·전국택배노동조합·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이 모여 각 당에 ‘플랫폼 왕국’ 대응책을 요구하는 집담회를 열었다.

“자영업자, 쿠팡 입점해서 쿠팡과 싸워야”

“자영업자들은 쿠팡에 입점하더라도 쿠팡과 싸워야 하는 이상한 구조입니다. 그리고 (플랫폼 기업들의) 이런 구조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선수단 심판이 선수로 경합하는 것을 과연 지금의 법안은 방어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정치권에)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이성원 한상총련 사무총장의 말이다.

이 말은 예를 들면 소비자가 쿠팡에서 특정 제품을 검색했을 때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 자체 브랜드 상품(PB상품)이 상단에 뜨는데, 이런 형태가 쿠팡 입점 업체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다는 의미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에 자사 상품 우대 혐의로 과징금 1628억원을 부과하고 쿠팡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쿠팡은 서울고등법원에서 과징금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이 밖에도 검색 노출 차별, 일방적인 정책 변경(수수료율 인상, 정산 조건 변경 등), 반품 비용 전가, 수수료·광고비 구조의 불투명성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쿠팡의 2024년 총거래액은 55조861억원(국내 전체 온라인쇼핑 거래액 약 242조원의 약 4분의1)에 달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진 상황이어서 이런 불공정 사례들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다.

2025년 5월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21대 대선 캠프 초청 플랫폼 이용자 집담회’가 열렸다. 손고운 기자

2025년 5월2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21대 대선 캠프 초청 플랫폼 이용자 집담회’가 열렸다. 손고운 기자


윤석열 정부가 2024년 배달 플랫폼과 입점 업체를 모아 ‘상생협의체’를 구성, 도출한 상생안은 “상생요금제가 아니라 살생요금제”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진우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의장은 “상생요금제 표의 상위 35% 구간에 있는 사람들은 수수료가 7.8%인데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루에 10만원치 팔면 상위 35%에 들어간다”며 “하루에 치킨 네 마리 팔면 기존보다 수수료를 더 많이 내는 역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정말 보여주기식으로 급하게 추진된 내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정해진 수수료 외에 전가된 배달비, 광고비, 프로모션 참여비 등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수수료는 매출의 20~30%에 이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닭발 가게를 운영하는 김준형 공정한플랫폼을위한사장협회 공동의장은 “정액제인 배달비와 정률제인 배달앱 수수료 구조 안에서 플랫폼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수료를 일부 인하하는 척하면서 배달비를 인상하는 꼼수를 계속해서 부리고 있다”며 “(각 정당이) 총수수료 상한제 공약의 구체적 수치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공약집에 배달앱 총수수료 상한제를 올렸지만,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진 않았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감감무소식

이날 집담회에선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올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다수 나왔다. 김남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제2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온플법 제정,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온플 입점자 단체등록과 협상권 부여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며 “그런데도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시적인 입법 성과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온라인플랫폼 관련 규제 법안이 22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주로 네이버·쿠팡·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의 지배력을 억제하고, 입점 사업자 및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관련법 제정을 공약했으며, 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과 관련 용역을 진행해 단일법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5월28일 서울 여의도 회관에서 ‘온라인플랫폼 공정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법 제정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소공연은 “입점 수수료나 중개 수수료, 배달비, 광고료, 결제대행업체 수수료 등 관련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수익이 터무니없이 적다”며 “퀵커머스(즉시배송)의 공세로 오프라인 유통 소상공인들의 설 자리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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