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친윤석열계로부터 거센 사퇴 압박을 받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12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동네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았다. 번화가 상가에도 공실이 자꾸 보인다. 온 국민이 윤석열에게 집단 손해배상소송이라도 할 판이다. 내수 진작이 애국인 시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책도 선구매할까 고민 중이다.
두어 달 전 이 지면에서 윤석열과 한동훈을 싸잡아 ‘두 전직 검사의 망상과 몰락’이라고 했다. 신속한 탄핵을 주저한 그의 ‘무능’이 못마땅했고 자칫 위험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윤석열과 옹호 세력이 정성스러운 개소리들을 해대고 국민의힘 인사들은 기를 쓰고 ‘극우향 파시즘 앞으로가!’를 외쳐대니, 둘을 묶어 비판할 일은 아니었구나 싶다. 그가 비상계엄 당시 누구보다 먼저 불법으로 규정하고, 군경에 동조하거나 부역하지 말라고 메시지 낸 것만도 썩 잘한 일이다. 뒤늦게 밝혀진 그날 밤 군경의 동선을 보니 더 그렇다.
그는 2025년 2월16일 출간을 알리며 대선 출마 채비를 갖춘 듯하다. 두 달간의 칩거로 깨달았으려나. 정치는 잘난 이가 베풀듯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책임이든 욕심이든 집착이든 도전이든, 기왕 맘먹었다면 잘하길 바란다. 말로만 ‘남다르게’를 내걸 게 아니라 기왕의 자신과도 다른 행보를 보이면 좋겠다. 지지자들 몰고 다니는 북콘서트 따위 집어치우고, 우쭈쭈쭈 해주는 어르신들이나 자기편 말고, 대면하기 껄끄러운 이들부터 만나면 좋겠다. 경쟁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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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동훈과 유승민이 손잡는다면, 판이 달라지지 않을까? 보수정치의 재편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힘을 좇고 복종을 미화하는 국민의힘의 행태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터무니없는 음모론과 죽이고 부수라는 선동에 휩쓸려 무차별적으로 극우쏠림 중인 행보에 제동이라도 걸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은 극우에 포획됐다. 시사인·한국리서치의 조사를 보면 지금 보수층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뉜다. 계엄을 비판하고 탄핵을 찬성하는 그룹(31%), 계엄을 비판하면서 탄핵은 반대하는 그룹(16%), 계엄을 옹호하고 탄핵도 반대하는 그룹(40%). 문제는 이 마지막 그룹이 극우세력에 급속히 동조화된다는 것이다. 거칠고 빠르게 세를 불리며 보수를 집어삼키고 있다. ‘네임드’들의 언행도 그렇다.
언제나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 나경원 의원은 2월19일 노동개혁 대토론회를 열었다. 내용은 뒷전이고 누가 극우 지지 1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가까운지가 중요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1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비상계엄 당시) 국회 현장에 있었더라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말실수도 아니다. “한동훈 전 대표가 바로 ‘위헌이고 위법’이라 얘기한 부분은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선을 완전 세게 넘었다. 그럼 ‘윤석열의 난’이 합헌이고 합법이란 말인가. 많은 국민이 이토록 힘든 시간을 견디는데 무슨 망발인가. 김기현 의원은 한동훈의 등판 예고에 “장수가 물러날 때와 나설 때를 구별 못하면 자신과 모두에게 큰 해악”이라고 악담했다.
이들이 견제하고 경계하는 걸 보니 한동훈의 분발을 더 응원하고 싶다.(젠장 또) 정권교체가 돼도 제1야당의 대표성이 이들에게 있어선 안 될 것 같다. 보수정치가 극우의 얼굴을 한 채 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랜 지지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지난 대선에서 꺼림직해하면서도 윤석열을 찍었다는 한 지인은 “이제 누구와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싫고 미운 것 정도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졌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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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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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펴낸 책 ‘국민이 먼저입니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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