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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찰에 너무 많은 먹이를 줬다

권한을 신분으로 착각한 집단의 우스꽝스러운 말로… 윤석열의 ‘왕놀이’도 검사 버릇
등록 2025-11-20 22:08 수정 2025-11-22 09:43
노만석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025년 11월10일 서울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노만석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025년 11월10일 서울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길까. 북미 원주민 체로키족의 지혜를 빌리면, 우리가 먹이를 많이 준 늑대가 이긴다. 업무를 위해 주어진 ‘권한’을 ‘특권’으로 여기고 나아가 ‘신분’으로까지 착각한 어느 집단의 불행한 말로를 본다. 우리는 그동안 검찰에 너무 많은 먹이를 줬다.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주체는 결국 검찰이다. 설사 법무부에서 어떤 압력이 있었건 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은 이상 ‘소신껏’ 대처했으면 그만이다. 옳고 필요했다면 말이다. 임은정 검사가 문 걸어잠그고 했던 일을, 최강욱 군검사가 별별 욕 먹어가며 했던 일을, 그 많은 검사는 왜 하지 않았나. 항소장은 검사 중 누구든 내도 됐다. 쓰지 말아야 할 권한은 그리 많이 써왔으면서 정작 권한을 써야 할 땐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못 써놓고는, 돌아서서 정권 탓을 한다. 어차피 오래 못 갈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해명하라고 집단성명이나 내니, 누가 여기서 의로움을 찾을 수 있을까.

횡설수설하다 물러난 총장 직무대행은 이름에 ‘~스럽다’라는 접미사가 붙었다. 항의 티만 내며 ‘기백 있게’ 떠난 서울중앙지검장에게는 “사표가 아니라 항소장을 낼 것이지”라는 비아냥이 따른다. 집단성명 뒤 사의를 밝힌 두 검사장에게는 “엑소더스 전에 (변호사 시장에) 먼저 깃발 꽂으려나”라는 조롱이 이어진다. 뭘 해도 미운 존재가 돼버렸다. 자업자득이다.

새삼 조명된 것은 그들의 ‘묵은 특권’이다. 다른 공무원들은 그만두면 몇 년씩 관련 분야 취업을 못하게 돼 있는데 왜 검사는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지?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제한되고 법적 처벌까지 따르는데 왜 검사들은 제재받지 않지? 검사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징계법상 파면당하지 않는다고?

최근 검찰의 처신은 권한 박탈을 염려한 ‘자해공갈’일까, 무리한 수사에 대한 ‘자백’일까. 대장동 사건은 물론 그간 검찰이 타깃 삼은 대상을 어떻게 ‘조져’왔는지 사례와 증언이 쏟아져나온다. 스스로 밝힌 것도 있다.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값 통계를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는 사건의 2025년 10월 재판에서 검찰은 “(알고 보니) 감사원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고 자신의 수사 결과를 부정했다. 앞선 7월 재판에서 공소장의 ‘조작’ 표현을 ‘수정’으로 고칠 때만 해도 청와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공소사실은 변함없다고 우기더니, 10월에는 그조차 감사원 탓으로 돌리며 슬그머니 물러앉은 것이다. 어이가 없다. 윤석열 정권에서 하수인을 넘어 아예 한 몸이 된 검찰은 ‘정치 보복’에 바빴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모두 무죄가 확정됐으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윤석열의 왕놀이, 위험천만한 전쟁놀이도 검찰에서 익힌 버릇이 가장 나쁜 방식으로 발화된 게 아닐까. 누가 나쁜 놈인지, 나쁜 놈이어야 하는지 결론을 정해놓고 증거며 증언이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끼워맞춰 ‘처넣는’ 방식 말이다. 나중에 무죄가 나든 말든 상관없다. 당장 칼을 휘두르는 게 중요하니까.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바뀐다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기소권과 상소권도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권한이다. 남용·악용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검찰’ 최후의 준동에 많은 국민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니 우리는 준비가 된 것 같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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