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심판 피청구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2025년 2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막무가내 계엄 옹호와 내란 선동에 장시간 노출되다보니, 인성은 물론 인상까지 나빠질까 두려워졌다. 욕하거나 한숨 쉬고 싶을 때마다 내 몸을 토닥이면서 마음을 달랬다. 기왕이면 웃으면서 했다. 하다보니 눈가 주름을 두드리며 미소를 머금은 채 “윤○○ 개○○”를 읊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이가 이런 나를 보고 진짜 무서워했다.
스스로를 껴안고 토닥여주기(태핑)는 우울증 자가치유법으로 꼽히기도 한다. 새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권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을 두드리자고 했더니, 친구들 중 절반이 휑한 정수리로 손끝을 가져갔다. 피부와 헤어에 각별히 신경을 써도 모자랄 50대 중반의 우리가 이렇듯 밤잠을 설치고 화병을 다스려야 하다니. 그나마 내 아버지가 유튜브에 안 빠지고 어머니가 태극기 부대가 아니며 내 아이가 온라인 세계에서 소신껏 게임에만 몰두하는 것을 고맙게 여기자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내가 돌보고 책임져야 할 이들이 혐중론자나 파시스트가 아닌 게 어디인가. 한 지인은 부모님이 부정선거론을 두고 찬반으로 의견이 갈려 불화가 잦은데, 한 분이라도 부정선거론자가 아닌 것에 감사하기로 했단다. 저마다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이 시국 마음관리법’을 찾는 중이다.
법원을 때려부순 폭동과 그것을 옹호하고 부추기는 이들의 민낯을 보며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절감했다. 극우 선동과 돈벌이와 기복적 신앙과 자기 효능감과 정치적 욕망이 만나 빚어낸 참상이 이렇게 날카롭게 터져나올 줄은 몰랐다. 비극을 목도하며 정신이 번쩍 든다. 제발 이것이 우리의 바닥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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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4일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 5차 변론 증인들의 답변 회피를 답답해하다가도 그들 너머 무수히 많은 ‘제복 입은 시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떠올렸다. 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투입 병력의 무장 여부를 논하다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사실을 엉겁결에 실토했다. 그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던 윤석열이 ‘자백’하는 모습도 보았다. 윤석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엄군 투입은 “내가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선거 사건에서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둥 “장비가 어떤 시스템으로 가동되는지 보라는 지시였는데 (부하들이) 생각한 것 이상의 조치를 했을 수는 있다”는 둥 장황하게 횡설수설했으나 핵심은 ‘선관위 군 투입은 내 지시’라는 거다. ‘빼박’ 탄핵 사유다. 모두가 힘겹게 감당하고 있는 탄핵 심판을 두고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쫓는 것 같다”며 말장난하고, “(나의 신속한 계엄 해제 덕분에)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들 호들갑이냐는 ‘괴랄한’ 논리를 펴는 와중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윤석열로 어질어질한 와중에 트럼프까지 어마어마한 이 시국’을 한겨레21 독자님들은 어떻게 건너고 계시는지. 특히 오랜 구독자이신 1970년, 1971년생 ‘개돼지들’은 잘 지내시는지. 2025에는 1970년생 개띠가 유난히 흥한다는데, 개띠와 친한 나는 그 말을 내 방식으로 믿을 생각이다. ‘재난’의 한복판에서 낙관하는 쪽을 택했다. 인간의 참모습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에서 나온다고 일찍이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선생님도 말씀하셨다. 봄은 올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또 윤석열을 뽑을 일은 절대 없으니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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