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21조(국회의 의원 정수) 1항 “국회의 의원 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47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 제21조 2항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선거구(지역구)에서 선출할 국회의원의 정수는 1인으로 한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지역구 중심의, 1인 선거구(소선거구) 제도는 개혁될 것인가? 선거제는 그동안 많은 사표(낙선자를 찍은 표)와 한 정당의 지역 독식, 승자독식, 양대 정당의 대립과 충돌, 정치 양극화 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졌고, 정치권에서도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88년 총선에서 도입된 뒤 숱한 논란을 일으킨 현재의 선거제가 개혁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선거제 개혁의 깃발을 든 것은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다. 정개특위는 2022년 7월22일 여야 17명으로 구성됐다. 산하에 국회선진화소위원회(1소위)와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2소위)를 두고 11개 안건을 다룬다.
11개 안건 가운데 핵심은 2소위에서 다루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이다. 이 제도는 2020년 제21대 총선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도입을 반대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고, 더불어민주당까지 이를 따르면서 누더기가 됐다. 따라서 이번 정개특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치개혁을 요구한 시민단체들도 2022년 10월26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을 재발족하고 10대 과제 중 하나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요구했다. 이어 시민단체들은 2023년 1월18일 국회에서 보수-진보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선거제 개혁을 요구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표의 등가성·비례성을 보장하고, 특정 정당의 승자독식과 지역 독점을 막아 민의를 국회의 구성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발언도 선거법 개정 논의에 기름을 부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래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큰 틀의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선 여야 모두에서 공감대가 있다. 2023년 1월9일 국민의힘 조해진,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정의당 심상정 등 여야 중진 의원 9명은 “정치개혁을 위해 초당적 논의를 하자”고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제안했다. 1월12일 여야 의원 52명은 “새해엔 승자독식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정치를 국민께 선보여야 한다”며 합류를 선언했다. 여기엔 국민의힘 15명, 민주당 31명, 정의당, 시대전환, 기본소득당 등이 참여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제21대 국회 정개특위가 활동에 들어간 2022년 7월22일 이후 제출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모두 12건이다. 이 가운데 9건은 더불어민주당의 김두관, 김민철, 김상희, 김영배, 김종민, 박주민, 이상민, 이탄희, 전재수 의원이 냈다. 국민의힘에선 김성원 의원, 정의당에선 이은주 의원, 무소속으론 민형배 의원이 냈다. 주요 쟁점과 관련해 이 12개 법안을 분석해봤다.
먼저 비례성이 높은 의석을 늘리자고 요구한 의원은 모두 9명이다. 먼저 1인 지역구-비례대표를 모두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수를 늘리자고 제안한 의원은 김영배, 김종민, 민형배, 이상민, 이은주 의원 5명이다. 이상민 의원은 권역별·전국 비례대표 173석, 김종민·민형배 의원은 권역별 비례 150석, 이은주 의원은 전국 비례 120석, 김영배 의원은 권역별 비례 110석을 제안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2020년 제21대 총선 때부터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성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갔다.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위성정당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지역 2’ 대 ‘비례 1’의 비율이 돼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정개특위의 김영배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고치려면 비례대표 수를 2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가 100석 이상 되면 지역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방안으로 현재의 1인 선거구를 완전히 폐지하고 4~11인의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자는 법안도 4명이 냈다. 김상희·박주민·이탄희·전재수 의원은 지역구 253석을 권역별 대선거구로, 비례 47석을 전국 비례와 조정 의석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대선거구제는 사실상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비슷하다. 특히 대선거구제는 유권자가 정당과 후보를 모두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은 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가야 하고, 그것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인 지역구 전체나 일부를 중대선거구나 권역별 비례대표로 바꾸는 경우 한 선거구에서 뽑는 의원수는 박주민 의원이 6~11명, 김상희 의원이 5~10명, 전재수·이탄희 의원이 4~9명, 이상민 의원이 4~5명을 제안했다.
선거구는 크기에 따라 소·중·대 선거구로 나뉜다. 대체로 소선거구는 1명, 중선거구는 2~4명, 대선거구는 5명 이상을 뽑는다.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을 보면, 민주당 쪽은 소선거구보다 대선거구를 선호한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전재수 의원은 “중대선거구에도 문제가 있지만, 현재 소선거구의 폐해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다면 어떤 제도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 논의를 불붙인 윤 대통령의 제안은 사실상 ‘중선거구’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서는 중선거구제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선거구는 소수정당보다 양대 정당에 더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강한 영호남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유리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조해진 정개특위 2소위원장은 “대선거구는 낯설고 많은 문제점이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2~4명 정도 뽑는 중선거구가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인구나 면적을 고려해 대도시는 중대선거구로 하고 농산어촌은 소선거구로 다르게 하자는 제안(도-농 복합형 선거구제)을 김상희·이상민·이탄희·전재수 의원이 냈다.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은 현역 의원들의 반대로 지역대표를 줄이기 어렵다는 현실론에서 나왔다. 현재보다 의원 정수를 늘리면서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법안은 이은주(360석), 김영배·이탄희(330석) 의원 3명이 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는 “현재 한국의 의원 정수 300명은 다른 선진국보다 적은 편이다. 인구 규모로 볼 때 적어도 400~450명은 돼야 한다. 다만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으니 세비 동결이나 지역구 감축 등 기득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 반대가 강해 의원 정수 확대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국회 의석을 현재의 300석으로 유지하자는 법안이 더 많다. 김상희·김종민·민형배·박주민·이상민·전재수 의원 6명은 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도 비례성이 높은 의석을 늘리자는 법안을 냈다. 김두관·김성원·김민철 의원은 현재의 비례대표 수를 유지하자는 법안을 냈다.
정개특위의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에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국민의 반대로 불가능하다. 의원 정수를 늘리려면 적어도 1년쯤 전부터 국회의원 총비용이나 보좌진 수와 관련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추진해도 될까 말까다”라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안을 낸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한국 정치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미 정치 불신이 임계점을 넘었다. 정치가 육지(목표)에 도착하기는커녕 침몰하고 있다. 일단 침몰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선거제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개특위의 김영배 의원도 “개혁에는 때가 있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개혁 안 하면 국회도 탄핵당할 수 있다. 탄핵당하기 전에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개정 가능성에 좀더 신중하다. “현재 선거제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 다만 국민은 비례대표에 대한 반감이 있고, 시민사회나 진보정당에선 연동형 비례대표 확대에 공감이 있다. 양대 정당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쉬운 중선거구제를 선호한다. 서로 방향이 다르다.”
여전히 선거제 개혁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선거제를 개혁해야 하지만, 실제 성과는 없을 것이다. 선거제 개혁이 현역 의원들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정당들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에 겨우 50여 명만 참여했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혁의 효과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상돈 전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는 다선 의원들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근본적으로 위성정당의 등장을 막기 어렵다. 또 지역구를 줄인다면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의 쇠퇴가 가속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도 “양당제의 폐해는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제에서 나왔다. 대통령제에선 협치나 연정이 어렵다.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양당제의 폐해는 계속될 것이다. 또 대통령중심제에서 국회가 다당제가 되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럽의 다당제가 안정적인 것은 연정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남인순 정개특위 위원장은 “1월 말까지 인구 기준이 확정되고, 2월 말까지는 2소위에서 복수의 개정안을 마련해서 결의문 형태로 제출한다. 3월엔 국회 전원위원회, 국민 공론 조사, 숙의 토론회 등을 열어 방안을 결정한다. 그 뒤 선거구 획정과 함께 처리한다”고 이후 일정을 설명했다. 국회 전원위원회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안했다. 상임위원회나 양대 정당에서 제대로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본회의에서 직접 심의해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문제에서 양대 정당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재수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는 “2월 말까지 민주당에서도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3월 국회에서 절충해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개특위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민감한 사안이고 현역 의원들의 동의도 받아야 해서 당론 모으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국회 전원위원회로 가야 할 수 있다. 본회의에서 이틀이고 사흘이고 토론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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