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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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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민주당은 계속 진다

왜 문재인 대통령은 42%로 당선됐나,
유권자 3천 명을 조사해 여섯 가지 유형 확인하니 여러 수수께끼가 풀렸다
등록 2022-09-21 17:47 수정 2022-09-21 23:1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대표에 취임한 첫날인 2022년 8월2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일신하고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이기는 정당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이 대표에게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대표에 취임한 첫날인 2022년 8월2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일신하고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이기는 정당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이 대표에게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8월 말, 더불어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는 활동을 마감하면서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미래비전보고서를 발간했다. 새로고침위원회는 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려 학자·청년활동가 등 외부 위원 5명으로 꾸린 쇄신기구다.

진보·보수 양쪽에 걸쳐 있는 유권자

이 보고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장은, 한국의 유권자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Q방법론’이라는 조사방법을 사용해, 응답자에게 30여 개의 진술문을 준 다음 해당 문장 내용에 선호하는 강도를 상대적으로 측정했다. 진술문은 ‘정부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복지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등 재산을 과세 대상으로 한 재산세율을 지금보다 낮추어야 한다’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와 같은 문장이었다.

3천 명의 패널이 응답한 자료를 모았더니 6개 그룹이 나타났다. 그다음에는 각 그룹의 구체적인 정책 선호 유형, 인구학적 특성, 지지 정당 등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려고 분석했다.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모든 정책 이슈에 일관되게 진보/보수 성향을 보이는 유권자는 많지 않고 △한국의 유권자는 개별 이슈에 선별적 선호를 가진 그룹으로 분화됐다는 것이다.

6개 그룹의 특징과 그 규모(3천 명의 패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를 살펴보면, 평등·평화 그룹(37.7%), 자유·능력주의 그룹(21.5%),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 우선 그룹(6.4%), 개혁 우선 그룹(6.3%)으로 나뉜다.(32쪽 그림1 참조)

평등·평화 그룹은 복지, 성평등, 노동, 민족주의, 균형외교 등에 많은 지지를 보이지만 환경과 혁신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자유·능력주의 그룹은 이념적으로 친자본주의, 친능력주의, 친핵보유, 친미 성향을 보이는 자유주의적 보수다. 반복지, 반환경, 반노동, 반소수자 포용 등의 성향을 보인다. 친환경·신성장 그룹은 복지 친화적이다.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되 국가의 역할을 인정한다. 혁신을 통한 신산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환경 이슈에서 진보적이다. 소수자·젠더 이슈에 보수적이고, 노동운동과 검찰개혁에 강한 반감이 있다. 반권위·포퓰리즘 그룹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기본소득’을 가장 원했다. 주택 구매를 지원하기보다는 월세를 지원해주기 원했다. 소수자와 난민에게 배타적이다. 민생 우선 그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을 1·2순위로 꼽았다. 정치개혁, 외교, 거대 이슈에는 무관심하다. 개혁 우선 그룹은 검찰개혁을 강력히 지지한다. 동시에 부동산 세율 인하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도 지지했다. 주택 구매 지원을 원하고 기본소득에 반대한다. 혁신과 환경 이슈에 무관심하고 소수자와 난민에게 배타적이었다.

아무리 결집해도 득표율은 40% 초반

특정 정당 선호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그룹은 평등·평화 그룹과 자유·능력주의 그룹이다. 평등·평화 그룹에서는 국민의힘 지지가, 자유·능력주의 그룹에서는 민주당 지지가 각각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투표를 안 할 가능성은 있지만, 상대 정당으로 넘어갈 스윙보터는 거의 없는 셈이다. 친환경·신성장 그룹은 스윙보터 경향을 보였다. 반권위·포퓰리즘과 민생 우선 그룹은 무당층이 40%를 넘었다. 개혁 우선 그룹은 민주당 성향이 강했지만, 민주당에 불만도 있었다.

이 결과를 접하고 나서 새로고침위원회 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직감한 것은 민주당의 제한적 확장성이었다. 이 조사는 온라인 조사인데다, 69살까지만 패널에 포함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보층이 조금 더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정까지 고려하면 평등·평화 그룹과 개혁 우선 그룹만으로는 아무리 결집해도 민주당의 득표율은 40% 초반을 넘기 어렵다. 게다가 두 그룹은 스윙보터 성격을 가진 친환경·신성장 그룹의 주요 이슈인 환경과 혁신에 둔감하다. 몇 가지 정치적 사건이 이해된다. 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42% 득표율로 당선되고 그 지지율은 대통령 임기 마지막까지 유지됐으며, 임기 중 개혁과제는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민주당은 왜 대선에서 패배했는가를.

2017년 대선에서 보수는 분열했다. 그 규모와 내용은 조금 달라졌지만, 분화의 특성은 대체로 분명해 보인다. 현재 한국의 보수는 자유·능력주의, 친환경·신성장, 반권위·포퓰리즘의 연합군이다. 이들은 서로의 선호는 거의 겹치지 않지만 민주당을 싫어할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선거에서는 단일한 집단으로 결집했고, 그 규모는 민주당 지지층보다 크다.

윤석열 정부 견제는 8순위

32쪽 그림2를 보면, 정당 이미지 조사에서 민주당이 착각과 오만에 빠졌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났다. 민주당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정당’ ‘도덕적인 정당’에서 국민의힘과 의미 있는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 신인에게 열린 정당’에서는 국민의힘과 동률을 기록했다. 같은 조사의 정당지지율 합산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꽤 앞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2022년 8월10~11일 조사 당시는 국민의힘에서 ‘윤핵관’과 이준석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아,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가 모두 최저점을 기록했다), 국민 눈에 민주당은 도덕성이나 개방성, 세대교체에서 국민의힘보다 못한 정당인 셈이다.

국민은 정치인이 가장 싫은 이유로 출세하고 재선하는 것, 기득권 이해 보호를 정치 목표로 삼는 것을 지적했다. 민주당의 문제로, 미래지향적·민생친화 정책을 외면하고 저질적인 정치 행태를 반복하면서 세대교체를 미루고 팬덤정치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민주당 지지도 제고를 위해 시급한 과제를 꼽으라고 했더니, ‘윤석열 정부 견제’는 8순위였다.(32쪽 그림3 참조) 이 정도면 답이 거의 나온 것 아닌가?

포커스그룹인터뷰(FGI)에서는 특히 민주당이 ‘민주화 세력’임을 자처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눈에 띄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는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민주화가 성공한 것은 소수의 리더뿐 아니라 다수 국민이 동참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앞세우는 것에 지지자들조차 동의하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주장으로 도덕성을 포장하는 것에 FGI 참가자들은 언제 얘기냐며 진절머리를 냈다.

민주당이 착각 속에 스스로 빠진 함정

이 보고서는 전장의 ‘지도’와 같다.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눈앞의 상황만 이해해도 충분하다면 지도는 필요하지 않다. 오늘 당장 정당 지지도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만 해도 된다면, 그렇게 여론만 따라다녀서 선거 승리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중장기 비전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눈앞의 이해관계만 따라다니면 결국은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빙빙 돌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가 일쑤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그렇게 해왔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것이다.

이런 속성은 새로고침위원회가 개최한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잘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을 ‘무능한 정당’이라고 말했다. 혁신과 변화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민주당은 늘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대면서 뒤로 물러섰다. ‘소나기는 피해 가는 법’이라며 당장의 이익을 선호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무능한 정당’이 됐다. 게다가 ‘저쪽보다만 나으면 된다’는 스스로 만든 함정에도 잘 빠졌다. 무엇에서 어떻게 나은지 모르고 어이없는 착각을 반복하면서.

그럼 이기는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할까? 유권자 지형에서 평등·평화 그룹은 단단한 민주당 지지층이다. 절대 국민의힘은 찍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운 이슈에 둔감한 낡은 진보다. 개혁 우선 그룹은 검찰개혁을 강하게 원하고,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다. 민주당은 이 두 그룹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민주당은 그래왔다. 강한 구심력이 존재한다. 여기에만 호소하는 게 당내 선거에서 유리하다. 보수는 평소에 분열돼 있어서, 민주당은 평소에는 다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큰 전투에서 보수는 연합하고 민주당은 패배한다. 민주당은 이것을 반복했다. 새로운 지도부는 2024년 총선 전까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야당 탄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버틸 것이다. 그리고 총선에서 또 질 것이다. 그리고 또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위안으로 삼을 것이다.

민주당이야말로 담대한 정치 필요

만약 이것이 싫다면? 전통적 지지층과 검찰개혁 지지자에게만 머물지 않으면 된다. ‘당신들의 말만 들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설득하고 견인할 담대한 정치가 필요하다. 복지·환경·혁신·청년·민생을 간절히 원하는 잠재적 지지층이 민주당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을 외면한 것, 이길 수 있는 길을 거부한 것은 민주당이다. 지도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승리라는 목적지로 갈 길이 있다고. 그 길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민주당이 결정할 일이다.

이관후 더불어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 간사·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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