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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버리고 다당제로 가자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한다”던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30곳 시범 도입에 그쳐… 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3인 이상 선거구 늘려놔도 2인 선거구로 바꿔버리기도
등록 2022-05-21 23:56 수정 2022-05-25 09:57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2022년 3월2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2022년 3월28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제20대 대통령선거 열흘 전인 2022년 2월27일. 일요일인 이날 저녁 8시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172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총회에서 민주당은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도입을 포함한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관련 내용을 발표한 지 사흘 만이었다.

개혁안의 주된 내용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고, 국회의원선거 때 연동형·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를 추진하는 것 등이었다. 곧 있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의총을 끝낸 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결의문을 낭독했다. “민주당이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의는 첫 시험대인 6·1 지방선거에서부터 무색해졌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한다”던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도입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에 관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4월1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들은 개정안 내용을 전날 합의문 형태로 발표했다. 전국 11곳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기초의원을 기존 2~4명이 아니라, 3~5명 선출한다는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기초의원 최소 인원이 2명에서 3명으로 늘면,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정당의 후보가 의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선거구 2.9%, 기초의원 4.2% 그친 중대선거구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95.7%, 기초의원 90.5%를 거대 양당이 독식했다. 영호남에선 한 선거구의 기초의원 두 자리를 모두 거대 양당이 차지한다. 선출 의석수만큼 한 정당에서 복수의 후보를 내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의 비례성이 국회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양당 합의를 촉구하며 일주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던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합의안 발표 직후 “다당제 정치개혁의 첫발을 내딛는 여야 합의가 도출됐다”며 농성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최소 3인 선출 선거구’는 결과적으로 극히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는 데 그쳤다. 시범지역 11곳은 서울 4곳, 경기 3곳에 인천·충청·영남·호남 각 1곳씩이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기초의원은 이 선거구들을 다시 둘 이상으로 나눠 각 시·도의회가 획정한 별도의 선거구에서 선출한다. 예를 들어 시범지역 중 한 곳인 경기 남양주시 ‘병’ 선거구의 경우 기초의원 선거구로 남양주시 ‘바’ 선거구와 ‘사’ 선거구 2곳으로 나눠 각각 3명, 5명의 시의원을 선출한다. 이런 식으로 양당 합의 직후 이뤄진 선거구획정에 따라,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실시되는 곳은 모두 30곳으로 정해졌다. 전체 선거구 1030곳의 2.9%, 선출 인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기초의원 2602명(비례 제외) 가운데 109명(4.2%)에 불과하다.

‘선거구 쪼개기’ 꼼수를 막겠다며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게 한 조문을 삭제한 양당 합의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2인 선거구로 쪼개기가 가능했던 것은 공직선거법 제26조 4항에 딸린 단서, ‘하나의 선거구에서 4인 이상을 선출할 때에는 2개 이상의 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다’는 규정 탓이다. 하지만 이 조문을 삭제해도 ‘쪼개기’를 법적으로 아예 금지한 것이 아닌데다, 선거구를 획정하는 최종 권한이 여전히 해당 시·도의회에 있어 결국 이 조치는 단순 권고에 그치고 말았다.

2인 선거구 18곳→39곳 늘려버린 부산

실제 이번 6·1 지방선거에 적용되는 기초의원 선거구획정 결과를 보면 양당의 정치개혁 의지를 의심케 한다. 지방의회의 선거구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모태로 한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전부 253곳인데, 시·도의원인 광역의원은 이들 선거구에서 2명씩 선출하고, 구·시·군의회의원인 기초의원은 다시 각 광역의원 선거구를 둘 이상으로 나눠 선출한다. 각계 인사로 이뤄진 시·도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인구변화 등을 고려한 권고안을 마련해 제출하면, 해당 시·도의회가 조례 의결 형태로 최종 확정한다.

4월 말 마무리된 각 시·도의회의 기초의원 선거구획정 결과를 보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라 불리는 2인 선거구가 여전히 전체(1030곳)의 절반을 웃도는 542곳으로 나타났다. 충북·충남·전북·전남은 심지어 2018년 선거 때보다 2인 선거구가 늘었다. 각 시·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3인 이상 선거구를 늘려놔도 해당 의회가 다시 2인 선거구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부산시의회는 18곳으로 제한된 2인 선거구를 39곳으로 늘렸고, 대구시의회는 6곳을 18곳으로 늘렸다. 충남 서산의 경우 획정위 안에서 2곳, 1곳 있었던 3인, 4인 선거구가 도의회 논의 과정에서 전부 2인 선거구로 바뀌었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도의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임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인 선거구가 최대한 확보돼야 3위 이하의 다른 정당이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줄기 때문이다.

부산의 경우는 좀더 노골적이다. 애초 획정위의 권고는 2인 선거구를 기존 44곳에서 18곳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3인 선거구는 23곳에서 27곳으로 늘리고, 전무했던 4인 선거구는 10곳을 신설했다. 다당제 정치개혁의 취지와 닿아 있었다. 하지만 이후 4인 선거구는 1곳으로 줄고, 나머지 9곳은 2인 선거구로 쪼개졌다. 3인 선거구 27곳은 25곳으로 줄고, 2인 선거구는 18곳에서 39곳으로 크게 늘었다. 부산 지역 소수정당들과 시민단체는 “시의회가 기득권을 유지하려 폭거를 자행했다”고 비난했다. 국회 로텐더홀의 결의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공천권자인 국회의원, 기초의원 지명하는 셈

이런 이유로,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들은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선거구 쪼개기 금지’를 천명하는 거대 양당의 당적 결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시·도의회가 법 개정 취지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려는 금세 현실이 됐다.

이번 지방선거의 다당제 실험 난맥상엔 석 달 전에 치른 대선도 영향을 미쳤다. 대선 과정에서 형성된 양당의 대결 구도가 여전한 까닭이다. 유권자의 관심은 줄고, 거대 양당 외에 다른 경쟁자가 나서지 않으면서 무투표로 당선된 이들이 20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5월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등록을 마감한 결과, 6·1 지방선거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고 무투표로 당선된 이는 494명이었다. 전체 선출 인원 4132명의 약 12%에 해당한다. 2002년 제3회 지방선거(당시 무투표 당선자 496명) 이후 20년 만에 최대 규모다. 중앙선관위는 기초의원 381명을 비롯해 기초단체장 6명, 광역의원 106명, 교육의원 1명의 당선을 후보 등록만으로 확정했다. 선거 평균 경쟁률은 1.8 대 1로 역대 최저치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공천권자인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 기초의원을 지명하는 셈이다. 선거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고 기초의원은 유권자 눈치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를 본다.

대의제민주주의에서 선거의 핵심은 되도록 모든 이의 의사가 의석에 반영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사하는 표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다. 사표를 막고,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가능한 한 일치시켜 표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선거제도가 기능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건강하게 발전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기초의원 선거제는 한 명에게만 투표해 최다 득표 순으로 당선자를 정한다. 승자들이 표를 독식한다. 1인이 1표를 행사해 득표순으로 기초의원 2~4명 또는 3~5명을 선출하는데(단기비이양식), 2006년부터 기초의회 선거에서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정치 선진국에선 이런 선거 방식을 채택한 사례가 없다. 과거 일본이 국회의원선거 때,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 시절 선거구마다 2명의 국회의원을 뽑을 때 썼을 뿐이다.

반면 유럽의 주요 나라들은 대개 다수대표제가 아닌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 각 정당의 지지율만큼 의석이 보장돼 사표가 없는 장점이 있다. 우리도 현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일부 국회의원을 뽑고 있다. 광역의회나 기초의회도 정원의 10%를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 이에 이참에 기초의회부터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참여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500여 단체가 모인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대선 시기 각 후보에게 제시한 ‘정치개혁 10대 과제’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선거제도의 비례성 확보를 주요 과제로 꼽은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현재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2022년 2월25일 텔레비전 토론에서 “정치개혁에서 개헌보다 중요한 건 선거제도의 개혁이며, 개인적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정치하기 전부터 선호해왔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제1야당, 시민사회가 지금의 선거제도 문제에 공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 지역정당 인정해야”

6·1 지방선거가 정치개혁의 시작이 되려면, 시범실시로 그친 중대선거구제를 넘어 국회 선거제 개혁 등으로 논의가 확장돼야 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거대정당의 의석 독점 현상을 막고 지역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좀더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방식은,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서 지역정당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지방선거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면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하기 힘들어진다. 다음 총선을 1년 앞둔 2023년 봄 안에 큰 틀의 합의가 나와야 실질적인 정치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며 정치권의 논의를 촉구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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