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일종의 추리 게임이다.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다만 중요하다. 하나둘 단서를 모아 우리가 밝혀야 할 건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 비전, 그리고 대통령 당선 한 달여가 지난 현재(2022년 4월14일) 그 지향점이 놓인 자리다. 윤석열 차기 정부의 머릿속이다.
결정적 단서가 돼야 했던 인물들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을 드러내고 구현할 내각의 수장들이다. 4월3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윤석열 당선자는 4월10일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8명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이어 4월13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등 8명의 후보자를, 다음날인 14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내각 구성을 마무리했다.(아래 그래픽 참조)
애석하게도 장관 후보자의 면면은 추리의 충분한 단서가 되지 못했다. 윤석열표 복지 체계의 비전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외과의사’ 이력만으로 알 수 없다. 주거와 부동산에 대한 태도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력이 없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말과 글에서 찾아본대도 단편적이다. 경제관료 특유의 분석력과 관리 능력을 인정한다 해도, 경제구조 전반에 대한 추경호 부총리 후보자의 정리된 시각 또한 아직 드러난 바 없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이력과 도덕성 논란(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1871.html 참조)만 무성하다.
한 정부의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떤 현실을 인정하며 수정되는지, 그리하여 지금 어떤 맥락 안에 정책 수혜자로 우리는 서 있는지 가늠하고 요구하는 과정은 그대로 민주주의다. 윤석열 정부의 머릿속을 파악하는 건 그 시작점이다.
정부 스스로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면, 추리라도 불가피하다. 비록 ‘문재인 정부 반대’가 유일한 메시지로 각인됐지만, 윤석열 정부를 구성하는 정책적 바탕이 없을 리 없다. 그것을 ‘정책의 원형’으로 부르기로 한다. 정책의 원형은 윤석열 정부 주변 학자와 관료들이 내내 반복해온 문장 속에 있을 테다. 그들의 저작과 논문(기사 하단 참조)을 모으면 실마리가 잡힐지 모른다. 지명된 후보자가 보이는 말과 행동의 배경은 그 실마리와 현실의 접점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바라는 건 지원이 아니라 규제완화다.” 4월10일 추경호 부총리 후보자의 지명 이후 첫 기자회견은 대체로 조심스러웠으나 어떤 면에서 윤석열 정책의 원형을 드러냈다. 덜 내주고 덜 간섭하겠다는 태도. 적잖은 보수 정부를 거쳐왔고 ‘작은 정부,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구호는 익숙하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고 해서 (예산을) 모두 늘리다가는 모두 다 망하게 된다”(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덫에 걸린 한국 경제>)는 재정지출에 대한 두려움 또한 익히 보아왔다.
다만 윤석열 정부를 둘러싼 인물들이 적었던 문장 속 ‘작은 국가론’은 더 순수하고 강경한 구석이 있다. 정부의 산업 지원까지 경계한다. 노동자 보호나 일자리 창출처럼 시장 내부의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부의 개입은, 복지정책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공격 대상이다.
이를테면 최상목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 등이 참여한 책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는 “중소기업, 벤처, 기초과학, 문화예술 창작, 농어촌 에너지 등 수많은 분야에서 예산 지원을 하고 있다. (…) 경제 분야에 있어서 정부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적혔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단서를 달기는 해도, 논문(공저)을 통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북돋기 위한 정책 지원은 피터팬 신드롬으로 인해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한다.(최민철·이창양, ‘The Peter Pan syndrome for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 때로 개발 시대의 보수 정부와 명확히 선 그으며 ‘진짜 보수’를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여주었던 각종 경제정책은 마치 정부 주도의 과거 경제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작은 정부는 구호로 그치고 있다.”(강석훈 당선자 정책특보, ‘한국 보수와 경제’)
‘시장 앞에 작은 정부’는 양날의 칼과 같다. 정부의 산업 지원은 분명 비효율적인 데가 있다. 4대강 사업 같은 일에 국가의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자원이 동원되기도 했다. 반면 중소기업 지원이나 지역 균형발전, 산업의 공공성 같은 나름의 사정을 지닌 재정지출마저 ‘비효율’로 묶어버린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탈세계화와 기후위기 앞에 일종의 국가 산업 프로젝트를 벌이는 터라 일면 시대착오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원형 속에서 작은 정부의 결정판은 노동 보호 제도의 유연화다. 정합성은 있다. 기업을 덜 지원하는 만큼, 덜 규제해야 한다. 삭제해야 할 규제의 자리에 노동 관련 제도는 가장 빈번히 담긴다. 윤석열 후보자가 ‘정치인 이상형’이라고 부른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책 <정책의 배신>에서 ‘규제’라는 단어를 117번 쓴다. 그 앞에 붙는 단어는 대부분 ‘근로시간’과 ‘정규직 해고’다. 경제단체장과의 만남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노동자 투쟁에 제대로 된 공권력 투입까지 요구하는 기업에 수긍한다. “(기업활동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추리의 단서를 정리해본다. ‘시장은 지원도 규제도 없이 알아서 경쟁에 몰두하게 둔다. 대신 시장에 공평한 결과를 요구하지 말라. 분배는 정부가 (저소득층 중심으로) 하면 된다’ 정도로 거칠게나마 표현된다. 다만 현실은 엄연하다.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 대-중소기업 상생 등을 통해 시장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으면, 정부의 재분배(복지) 부담 또한 밑 빠진 독처럼 늘어난다. 작은 정부에 실패한다. 딜레마다. 무엇보다 제각기 이유를 지닌 산업 지원의 축소, 노동자 보호의 후퇴는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갈등은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비용의 크기를 배로 늘린다. 낙수효과든 분수효과든, 시장 내 분배 역할을 이전 정부들이 강조해온 이유다.
현실과 만난 윤석열 정부는 순수에 가까운 작은 정부론이 놓인 딜레마 앞에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불평등한 사회,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 협치가 이뤄지지 않는 정치는 총요소생산성을 낮춘다”(4월3일)고 말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강도 높은 노동개혁을 주장했던 이들 대신, 노동계 출신인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지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양적으로 폭탄을 넣거나 시장에 이상 과열을 부추길 수 있는 공급은 윤석열 정부에서 추구하는 공급이 아니다. 정교하고 신중하게 움직일 것”(4월11일)이라고 했다. 부동산 규제완화 속도를 조절한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부동산 규제를 맹렬히 비판해온 윤석열 정부, 당선 한 달 만에 주춤한다. 의외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공약을 마련한 김경환 서강대 교수의 책 <주택정책의 방향전환을 위하여>는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을 비판한다. 14년 전에 쓴 책이지만 2022년에 읽는대도 별 무리 없다. 부동산에 얽힌 윤석열 정부 정책의 원형을 고스란히 담았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집값 잡기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필요한 입지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원리를 따를 때 이상적이다. 임대주택 문제 또한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이 아닌 임대주택 공급자로 인정하면 된다고 여긴다. 심교언 대통령직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건국대 교수)은 책 <부동산 왜? 버는 사람만 벌까>에서 한탄했다. “선진국에서는 다주택자를 임대주택 공급자로 인식하고 이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내 집도 셋집도 민간에 내맡기는 부동산정책의 원형은 바로 냉혹한 현실을 맞았다. 하락 조짐을 보이던 서울 집값이 윤석열 후보 당선 직후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꿈틀댄다. 이럴 줄 모르지 않았다. 14년 전 이미 예상했던 바다. “재건축에 대한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면 당장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용적률 증가로 공급이 늘게 되면 장기적으로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난다. 단기적인 부작용을 감내하지 않고는 장기적인 편익을 실현하기 어렵다.”(김경환, <주택정책의 방향전환을 위하여>)
설혹 장기적인 가격안정 효과를 인정한대도, 그사이 집값 상승을 어떻게 버틸 것인가? 대규모 재건축은 일시적 멸실로 전·월세 수요를 늘려 세입자의 처지 또한 악화한다. 정책의 원형을 이룬 학자의 문장은 ‘여론을 버티라’고 에둘러 주문한다. 그럴 수 없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정치적 자원이 맥없이 소모되는 걸 문재인 정부에서 보아왔으니까. 부동산정책에서 상대적으로 규제완화론자의 색채가 덜한, 무엇보다 정치인 원희룡 후보자 지명과 속도조절이 이쯤 되면 ‘의외’로 보이지 않는다.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설득과 조정, 결국 정치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또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 가능하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부동산 폭등, 세금 폭탄은 명백히 현 정부 잘못이지만 그걸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당장 바로잡기는 힘들다. 새 정부 출범 후 부동산 세금이 바로 떨어지지 않고, 공급이 늘어나지 않으면 국민은 새 정부 탓으로 생각할 것”(4월11일)이라며, ‘새 정부 탓 아님’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머릿속은 다양한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정호영 후보자 지명은 혼란을 외려 더한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가, 추리를 시도한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는 복지·재정·노동·시장을 아우르는 거대한 복지 개혁 방안을 제시한다. 핵심은 부의 소득세다. 더 많이 번 이가 더 많이 소득세를 내되, 소득 자체가 적은 이들에게는 정부가 급여를 개인 단위로 매월 지급한다. 월 50만원의 급여가 누구한테나 보장되는 사회를 그린다. 다만 기본소득과 달리 시장에서 연 1200만원 이상 버는 이들에게는 지원하지 않는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 기능, 고용·산재 보험 등 복지급여와 안전망 대부분 ‘부의 소득세’로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단순 명쾌한 안전망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완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한다.
부의 소득세 같은 대대적인 개혁은 아니래도, 현금급여와 대비해 사회서비스복지(현물 지원)를 강조하는 방안도 꽤 오래 윤석열 정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상훈 인수위원(서울대 교수)은 책 <복지정치의 두 얼굴>에서 “현금의 형태로 주어지는 프로그램보다 사회서비스의 형태로 주어지는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 고용창출의 효과가 매우 높아진다”고 적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현금 소득 중심의 현재 가계소득 통계로 잘 파악되지 않는 현물 복지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따로 추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윤석열 당선자가 즐겨 언급하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어느 쪽도 윤석열 당선자 공약집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공약은 기존 복지제도를 어정쩡하게 늘리는 정도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대상을 조금 늘리고, 기초연금을 인상한다. 그렇다면 ‘부의 소득세로 현금급여를 통합’하는 거대한 개혁은 일단 탈락한 걸까. 현물 복지를 두고도 ‘사회서비스 종사자의 처우 개선’ 외에 뚜렷한 방안이 공약집에 담기지 않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수요자 맞춤형 복지를 실시하고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추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얹고 있을 뿐이다.
복지국가를 둘러싼 정부의 비전은 원형과 현실을 견줘 보아도 명료해지지 않는다. 애초 정부 스스로 복지정책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혹은 무관심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밝힐 도리는 없다. 애석하대도 추리는 이쯤에서 포기한다.
whorun@hani.co.kr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 <덫에 걸린 한국 경제>, 2013
김소영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 인수위원 등, <혁신의 시작>, 2021
최상목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 <경제정책 어젠다 2022>, 2021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등, ‘The Peter Pan syndrome for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 Evidence from Korean manufaturing firms’, 2020
강석훈 당선자 정책특보, ‘한국 보수와 경제’, 2008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정책의 배신>, 2020
김경환 서강대 교수(윤석열 캠프 부동산정책 총괄) 등, <주택정책의 방향전환을 위하여>, 2008
심교언 대통령직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 <부동산 왜? 버는 사람만 벌까>, 2017
안상훈 대통령직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인수위원 등, <복지정치의 두 얼굴>, 2015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등, <노동의 미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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