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건 벼랑 끝 싸움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022년 4월12일 의원총회에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는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의 참패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이날 의원총회 뒤 발표한 내용을 보면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196조(검사의 수사.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 검찰청법 제4조 1항(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6개 중요 범죄 항목)을 폐지할 계획이다. 6개 중요 범죄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사의 보편적 수사권은 폐지된다. 다만 검사는 경찰공무원의 범죄에 대한 수사, 경찰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의 보완수사 권한 정도만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0년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데 이어 검찰은 수사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잃게 된다.
민주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5월3일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 때 이를 공포하도록 할 예정이다. 3개월가량 법 시행 유예기간을 둬서 그사이에 검찰 수사를 대신할 기관도 신설할 계획이다. 이 유예 조항은 검찰이 수사하던 6개 중요 범죄 수사에 공백이 생기리라는 우려를 고려한 것이다.
이런 법 개정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먼저 4월 중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와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국민의힘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등을 통과해야 한다. 민주당은 법사위 통과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무제한토론은 회기를 바꾸는 방식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개정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더라도 국민의힘과 검찰의 강한 반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회에서의 처리가 끝나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공포가 남아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1단계 검찰개혁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1년 초 민주당의 수사-기소 분리 추진에 대해 당시 청와대는 1단계 검찰개혁의 안착이 우선이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떠나는 문 대통령이 2단계 검찰개혁을 승인할지도 주목된다.
민주당이 이렇게 무리하게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 2022년 3월 말까지만 해도 수사-기소 분리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였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였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수사-기소 분리에 가장 적극적인 의원들조차 “동력이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민주당 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채널에이(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으로 검-언 유착 혐의를 받던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에 대해 4월6일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과 한동훈 검사장 명예훼손 혐의를 받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해 4월7일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한동훈 검사장이 발표한 입장문이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입장문에서 한 검사장은 추미애, 박범계 등 전현직 법무부 장관과 친정부 성향의 검찰 간부, 언론매체를 모두 비판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검사장의 강한 발언이 민주당 안팎의 분노와 우려를 증폭했다.
대통령의 검찰 직접 지휘를 암시하는 공약민주당의 이런 속도전에 대해 국민의힘과 검찰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월13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수사-기소 분리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민주당 실세들의 부정·비리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문제점, 부작용, 민주당의 의도를 설명해 국민이 법안을 저지할 수 있게끔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4월13일 아침 “(수사-기소 분리는) 정의와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필사즉생의 각오로 국회, 대통령, 헌법재판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와 방안을 강구해 최선을 다해 호소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김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앞서 전국의 지검장들도 4월11일 전국지검장회의를 열고 “국민적 공감대와 절차적 정당성 없이 검찰의 수사 기능을 폐지한다면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 추진에 발언을 삼갔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4월13일 한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강 대 강’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당선자도 검찰 관련 공약과 발언으로 우려를 일으켰다. 윤 당선자는 대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우선수사권 폐지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 △검찰에 예산편성권 부여 등 검찰 권한을 강화하고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암시하는 듯한 공약을 내놨다. 2월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선 △문재인 정부의 비리와 불법에 대한 수사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 재수사 △한동훈 검사장 중용 뜻을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민주당에 신중한 추진을 주문했다. 민변은 4월12일 성명을 내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의 방향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국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의해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4월13일 성명에선 검찰의 강한 반발에 대해 “검찰의 집단적 반발은 조직이기주의에 의한 집단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검찰의 권력화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수사-기소 분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수사-기소 분리는 정파나 선거의 유불리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검사에게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등 중요 권한을 몰아준 이런 제도는 전세계에 다른 사례가 없다. 이번에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장(변호사)도 “검찰에 과도한 권한이 있고 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다. 특히 과거 보수 정부 때는 검찰 선배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아 사실상 검찰을 지휘했다. 이번엔 대통령이 검찰 선배이니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도 없애고 비공식적으로 지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나치게 이 입법을 서두르는 것에는 비판이 많다. 이상돈 전 의원은 “대선에서 지고 정권이 끝나는 마당에 중요한 법안을 이렇게 처리해선 안 된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검찰개혁안이 문제가 많았다. 그런 점을 전면 재검토하고 여야 합의로 새로운 검찰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사의 수사권 폐지라는 방향은 옳지만, 민주당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검사가 맡은 6대 범죄 수사는 어떻게 할지, 검찰의 수사 인력은 어떻게 할지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대로 수사-기소 분리 법안 처리는 가능하겠지만, 윤석열 행정부에서 그것이 제대로 집행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서 큰 논란거리는 검사의 6개 범죄 수사권을 어느 기관에 넘기는가 하는 문제다. 2021년 1월부터 개정 시행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개 분야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 대체로 이들 범죄는 검찰이 집중해온 ‘특별수사’ 분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 범죄 수사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주당은 6개 범죄 중 공직자 범죄를 제외한 범죄들은 앞으로 신설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넘길 계획이다. 공직자 범죄는 공수처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경찰에 중요 범죄 수사를 모두 넘기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다. 그래서 중수청을 신설해 기존의 검찰 수사 범죄를 넘기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사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중수청으로 옮겨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능력 필요 vs 특별한 능력 없어중수청 신설에 부정적 의견도 있다.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장은 “중수청을 새로 만드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새로 수사기관을 만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원래가 수사기관인 경찰이 시간을 갖고 준비해서 넘겨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검찰 수사 인력도 경찰이 넘겨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기존에 검사가 수사하던 6개 범죄를 중수청이 넘겨받더라도 ‘범죄 대응의 공백’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많은 이가 우려한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찰이나 새로운 수사기관이 6개 범죄를 넘겨받는다고 갑자기 수사 역량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사엔 능력과 노하우가 필요하고, 이것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당의 검수완박은 부정비리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정비리 수사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수사 공백이 지나친 우려라는 주장도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사의 수사 능력은 과장돼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수사 능력 대부분은 압수수색, 구속, 신문조서 증거능력, 기소 등 과도한 권한에서 나온 것이다. 검사의 수사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사에게 특별한 수사 능력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만약 검사에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고 수사 공백이 걱정된다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중수청으로 가면 된다. 그러면 검사의 수사 역량과 노하우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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