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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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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대통령실 이전의 정치

‘대통령실 이전’ 사태에 드러난 5개의 열쇳말,
민주적 절차·국민과의 소통·타협·계획과 준비·안보
등록 2022-04-04 13:21 수정 2022-04-06 01:58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22년 3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안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22년 3월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안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부를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결정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제1정책 과제로 추진하던 ‘신행정수도’ 건설을 무효로 만들었다. ‘관습헌법’을 내세운 이 결정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는 여기서 대통령의 소재지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소재지를 바꿀 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충분한 공론화와 계획,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이전 대상지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자리잡은 대한민국의 전쟁 지휘부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군사 강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대통령은 언제나 안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 뒤 20일 남짓한 기간에 보여준 ‘대통령실 이전의 정치’는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사를 다룰 때는 그만한 진지함과 사려 깊음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윤석열 당선자가 보여준 정치에 대해 정치인과 전문가 1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뒤이어 예비 대통령 윤석열이 전하려 했던 말을 중심으로 당선 뒤 20일을 되짚었다. 이전 정부들과 달리, 예비 대통령이 개혁의 정치적 자원을 모으기 위해 통합적인 정책 기조를 설득하는 일은 드물었다. _편집자주

이 북새통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마도 2022년 1월27일일 것이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설치하고 관저는 삼청동 총리공관 등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애초 대통령실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이런 흐름이 달라진 것은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엿새 만인 3월15일이다. 이날 아침 나온 박성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의 칼럼 ‘청와대는 국방부로 가야…‘용의 땅’ 대통령 시대’가 그 신호탄이었다. 새 대통령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보다 며칠 전 윤석열 당선자 쪽의 김용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부팀장(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박 기자한테서 용산 이전 아이디어를 얻었다.

‘예산 지원’, 취임 전 될지는 불확실

이때부터 일사천리였다. 김용현 부팀장은 태스크포스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3월15일 국방부를 방문해 대통령실을 옮길 수 있게 4월 초까지 국방부 청사를 비우라고 요구했다. 이어 3월19일 윤석열 당선자도 국방부를 방문했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 5월10일 취임일부터 근무하겠다. 이를 위한 예산 496억원은 예비비로 현 정부에 협조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시민에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때부터 제동이 걸렸다. 3월21일 청와대는 “새 정부 출범까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라고 밝혔다. 성급한 용산 이전 계획을 반대한 것이다. 윤 당선자 쪽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협조를 거부한다면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다. 5월10일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맞받았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이런 팽팽한 대치는 일주일 만에 조금 느슨해졌다. 3월28일 청와대 첫 만남에서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지역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차기 정부가 판단할 문제다. 지금 정부는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가 요구하는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예산이 5월10일 새 대통령 취임 전에 지원될지는 불확실하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둘러싼 현직-다음 대통령의 이견은 여전히 내연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인수위 기간에 윤 당선자의 리더십과 정치 스타일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을 만하다. 앞으로 5년 동안 한국 정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풍향계와 같다. 한편으로는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다른 편으로는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윤석열 당선자의 스타일은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치 스타일에 대해 정치인과 전문가 등 13명의 의견을 들어 다섯 가지 열쇳말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1. 민주적 절차: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위반?

절차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해당하는 가치다. 많은 이가 이번 사안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윤 당선자가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행정도시 건설과 비교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세종시로 20개 중앙행정기관을 옮길 때는 2003년 공론화, 2005년 법률 제정, 2007년 착공, 2012~2014년 이전 등 모두 11년이 걸렸다. 이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착공까지만 마쳤고, 입주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이뤄졌다.

이번 대통령실 이전은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처, 경찰 경비부대, 수도방위사령부 경비부대의 이동을 수반한다. 또 용산의 국방부와 합참 등 16개 부대, 기관이 연쇄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큰 그림을 그려 추진하는 게 타당하다. 5월10일까지 두 달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주의는 절차를 통해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이란 공공기관을 옮기려면 먼저 권한이 있어야 하고, 국민과 관련 부처, 관련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당선자 개인 판단으로 이런 문제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률적 문제점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7조를 보면, 인수위원회의 업무는 정부 조직과 예산 파악, 정책 기조 준비, 취임 행사 준비, 그 밖에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이다. 대통령실 이전과 같은 구체적인 업무는 포함돼 있지 않다. 국방부와 합참의 이동 역시 엄연히 현직 대통령 권한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는 “윤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대통령실 이전을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검사 출신임에도 법률에 대한 존중감이 없다. 공적인 행동은 반드시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민주적 절차를 간과했다고 보지 않는다. 대선 때 공약을 추진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실을 이전하고 청와대를 개방하면 평가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대 대선이 끝나고 19일 뒤인 2022년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을 하러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대 대선이 끝나고 19일 뒤인 2022년 3월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을 하러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 국민과의 소통: 
국민 54%가 용산 이전 ‘반대’

소통은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남의 이야기나 여론을 듣지 않았다.

3월25일 아침 윤 당선자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대통령실 이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윤 당선자는 “지금 여론조사를 해서 몇 대 몇이라고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국민들이 이미 정치적·역사적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많은 전직 대통령이 선거 때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했고, 국민들이 이를 지지했다. 새로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있냐”고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언론인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간 대통령이 있었나? 취임 뒤엔 정말 새로운 리더십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자의 태도는, 자신이 대통령실 이전을 공약했고 당선됐으므로 이 정책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그의 공약 전체가 모두 주권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더욱이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은 대통령실 이전 자체가 아니라 그 추진 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3월23~24일 한국방송이 한국리서치에 맡겨 전국 18살 이상 1천 명을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53.8%가 반대, 40.6%가 찬성했다. 반대한 이유는 ‘충분한 사전 검토가 없어서’(38.1%)와 ‘비용이 많이 들어서’(22.0%), ‘안보 공백이 우려돼서’(12.3%) 등 절차와 방법을 둘러싼 문제들이었다. 국민이 이미 동의했으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는 윤 당선자의 답변과는 거리가 멀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소통하겠다면 대통령실 이전의 장단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 50일 만에 이전해도 안보에 틈이 생기지 않는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여론조사나 전문가 간담회, 부처 검토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없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이 맞는가”라고 물었다.

3. 타협: 
국민의힘 내부 반대, 현직 대통령 의견도 무시

타협은 민주주의 정치의 열쇠 중 하나다. 타협이 없다면 세상에 정치는 없어지고 전쟁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지난 20일 동안 윤 당선자가 보여준 모습은 정치가 아니라 ‘비타협적 투쟁’에 가까웠다.

윤 당선자는 애초 공약했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이전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자 곧바로 용산 국방부 이전으로 바꿔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윤 당선자 주변의 핵심 인물들도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장제원 비서실장,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박주선 인수위 취임준비위원장,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 등의 주문이었다. 시간을 갖고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 용산 이전을 준비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보란 듯이 3월19일 국방부를 방문했고, 그다음 날 국방부 청사를 5월10일 취임일부터 새 대통령실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3월21일 청와대가 취임에 맞춰 대통령실을 옮기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그러자 윤 당선자는 청와대가 협조하지 않으면 취임일 이후에도 현재의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계속 일할 거라고 밝혔다. 5월10일 청와대 개방도 반드시 하겠다고 덧붙였다. 거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비상 상황에서 써야 할 청와대 벙커(국가위기관리센터) 문제도 불거졌다. 3월21일 청와대의 불가 방침 뒤 인수위는 취임 뒤 청와대 벙커를 두 달가량 쓸 거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방침도 사흘 만에 뒤집혔다. 3월24일 인수위는 청와대 벙커를 사용하지 않고 미니버스 크기의 ‘국가지도통신차량’을 쓰겠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 본인의 결정이라고 알려졌다.

김종대 정의당 전 의원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 시간을 갖고 용산 이전을 준비하자는 의견이나 통의동에 머무는 동안 청와대 벙커를 쓰자는 의견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내부 조언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대통령의 정치가 아니라 군주의 통치와 같다. 앞으로 여야 간에 타협과 조정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새 대통령의 업무 환경을 타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선자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타협해주면 되는 일 아닌가. 2천억원 정도 드는 이전 비용도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4. 계획과 준비: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급변경

윤 당선자 쪽은 3월10일 당선 직후부터 대통령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관저로는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이 꼽혔다. 특히 3월14일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은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에 대해 “보안 사항이라 이야기 안 했을 뿐이지 디테일한 건 다 검토돼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결국 하루 뒤인 3월15일 용산 국방부 이전 방안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용산으로 급변경된 것에 비판이 쏟아지자 김용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부팀장은 3월22일 한 방송에 나와 “2월 중순부터 광화문 청사와 함께 대안으로 10여 곳 검토했다. 50명 이상 예비역,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급히 해명했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최측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3월21일 한 방송에서 용산 이전은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한테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 전엔 광화문 청사만 검토했다고 말한 것을 뒤집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첫째, 윤 당선자는 대선 공약이던 광화문 이전 방안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7년 대선에서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길 수 없다고 발표했다. 윤 당선자 쪽이 그 이유를 검토했다면 전임자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방안은 당선 직후인 3월10~15일 사실상 처음 검토됐다는 점이다. 중대한 문제를 졸속으로 추진한 것이다.

이상돈 국민의당 전 의원은 “개인의 이사도 집 알아보고 이사하는 데 두 달 이상 걸린다. 대통령실은 개인 공간이 아니라 국가 공간이다. 당연히 취임 뒤에 후보지를 검토하고 국회에서 정식 예산을 받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대통령실을 옮기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의 여러 시스템을 새 대통령실에 완벽하게 다시 마련한 뒤 옮겨야 안보와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시간을 갖고 준비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견이 있을 때는 결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취임 뒤에 추진하려면 얼마나 논란이 많겠나. 인수위 기간에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인수위원들이 2022년 3월18일 오후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살피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인수위원들이 2022년 3월18일 오후 대통령 집무실 후보지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살피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5. 안보: 
벙커만 있으면 된다?

안보는 만에 하나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안함 사건 같은 일이다. 따라서 한 치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엄격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윤 당선자의 태도에선 안보에 대한 경시가 드러났다.

윤 당선자 쪽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보를 중시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3월15일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국방부에 가서 4월 초까지 사무실을 비우라고 요구했다. 이어 3월20일 윤 당선자는 용산의 새 대통령실 조감도를 설명하면서 국방부와 합참의 벙커 위치를 구체적으로 가리켰다. 3월24일 인수위는 청와대 벙커 대신 이용하겠다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국가지도통신차량’의 존재를 공개했다. 윤 당선자가 취임일인 5월10일부터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하겠다는 것에도 무리가 있다. 청와대 안은 온갖 군사, 경호, 보안 시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안보를 중시하기 때문에 국방부가 있는 용산으로 가는 것이다. 광화문 청사엔 벙커가 없어서 벙커가 있는 용산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병주 민주당 의원(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올봄은 우리 정부의 교체기이고, 한·미 연합훈련이 있고, 북한의 큰 기념일이 많아 안보 불안이 크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무리한 일을 벌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가 강 대 강이 될 가능성이 커서 더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종욱 동국대 행정대학원 대우교수(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관)는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은 대북 안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안전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이명박 정부 때 이 시스템을 없앴다가 문제가 커진 일이 있었다. 성급한 대통령실 이전으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한 안에서 일하고 책임지라

많은 전문가가 윤 당선자가 법과 민주적 절차에 따를 것을 주문했다. 김진애 민주당 전 의원은 “대통령실을 옮기고 싶다면 공론화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법과 예산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윤 당선자가 강조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국회를 존중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 안에서 일하고, 행사한 권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귀를 열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상돈 전 의원은 “패거리 정치를 하지 말고 전문가와 관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쓰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대 전 의원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용산 대통령 시대도 국민과 함께 열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초기에 큰 실패를 하고 깨달으면 늦는다”고 말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력과 결단력은 윤 당선자의 장점이지만, 이제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일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승수 대표는 “(윤 당선자가) 스스로 경험이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실 이전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 개정으로 합리적 대통령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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