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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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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혐오할수록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인권운동가 김인권이 말하는 차별금지법
등록 2022-03-07 00:09 수정 2022-03-07 17:39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에 나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가 2021년 11월1일 충북 청주시를 걷고 있다. 박승화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에 나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가 2021년 11월1일 충북 청주시를 걷고 있다. 박승화 기자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초록 펼침막이 보였다. 아홉 글자가 선명하다. ‘이번 대선 나만 답답해?’
2022년 3월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야외 ‘광장마당’에 200명가량이 모였다. ‘세상을 바꾸는 2022 대선공동행동’(대선공동행동)이 주최한 ‘3·1 정치파티’에 모인 사람들이다. 대선공동행동은 2022년 2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개인들이 꾸린 단체다. ‘미래의 비전 대신 네거티브와 막말이 난무하는 대선을, 답답해서 두고 볼 수가 없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모였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정권 교체 아니면 정권 재창출’ ‘정권 재창출 아니면 정권 교체’라는 돌림노래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려야 한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를 말할 때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정치와 나라를 책임지기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같이 다녔던 지역주민들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 ‘동서울시민의힘’ 회원들도 이날 참석했다. 김신옥진 집행위원장은 “대선 후보 TV토론을 보면 주요 후보들이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공방만 하고 정작 성평등·노동권 같은 중요한 가치는 말하지 않는다”며 “대선에서 사라진 목소리를 함께 내고 싶어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치파티’의 마지막 순서는 거리행진이었다. 참가자들은 맨 앞에 ‘기미년엔 독립선언, 임인년엔 주권선언’이라고 쓴 펼침막을 세웠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참가자들의 구호를 듣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인정, 인정. 나도 누굴 뽑을지 모르겠어.”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겨레21>은 대선을 앞두고, 그동안 선거 국면에서 주요한 ‘표’로 계산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선 후보들이 좀처럼 발언하지 않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다. 총 25명을 인터뷰했고 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20대 여성, 장애인, 빈민, 비정규직 노동자, 기후위기 활동가, ‘차별금지법 활동가’ 등 7명이 직접 말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해 글을 싣는다. 이들은 말한다. 주어진 양자택일형 시험을 거부하고 문제의 오류부터 지적해야 한다고. _편집자주

“차별금지법은 제정해야 된다. 그러나 강행 처리 방식으로 할 사안은 못 된다. 국회에서 신속하게 논의해서 처리하는 게 좋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2022년 2월11일 대선 후보 TV토론

“차별금지법도 일률적으로 가다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2021년 11월25일 ‘청년 곁에 국민의힘!’ 행사

때리지 말라는데 ‘그것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건 국회에서 논의하는 게 좋겠다’고 선을 긋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또는 ‘평등법’) 제정 이야기다.

나는 ‘가자, 평등의 나라로!’라는 ‘대선 유세단’ 활동에 참여했다. 2022년 1~2월 전국을 돌며 ‘○○○ 대통령!’ 대신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외쳤다. 시민들의 공감이 달라진 걸 느꼈다. ‘법 제정이 필요하다’에서 ‘법 제정을 하자’로, ‘왜 필요하냐?’는 ‘차별금지법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로. 대선 후보들도 더는 대놓고 ‘반대한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건 다수를 위한 ‘민생 법안’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 사유를 각각 20개 이상 명시하고 있다.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 용모 등 신체조건, 성별 정체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학력, 병력 등이다. 누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차별금지법은 피해자에게 언어와 토대를 제공한다. 직접 억울한 일을 해결하고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 차별의 증명 책임을 피해자와 그 상대방 모두에게 부과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실질적인 시정명령과 법원의 구제 절차를 마련한다. 그로써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가 사회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큰 두 명의 대선 후보는 공약집에 넣지 않았다. 2020~2021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더불어민주당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은 각각 평등법을 대표 발의했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성인 1천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도 의미심장했다. 응답자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2021년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민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회 상임위에 자동 회부됐다. 법사위는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제21대 국회 임기 종료 시점인 2024년 5월29일까지 법안 심사를 연기했다.

한마디만 보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면서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는 건 모순이다. 성별 임금 격차는 채용부터 교육, 임신·출산, 육아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얽힌 결과다. 모르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그러면 무능한 것이다. 이번 대선 기간에 노골적인 여성 혐오, 이주민 혐오 발언 등이 등장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한 국민의힘이 그 중심에 있다. 제1야당까지 합세한 마당에, 혐오와 차별은 당장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법 제정이 시급하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앞장선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했습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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