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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여론 읽기

선거 때 ‘샤이’ 언급하는 쪽이 진다

선거 결과 예측·분석에 ‘요술방망이’처럼 등장… 낮은 지지율에 ‘방패막이’ 삼기도

제1367호
등록 : 2021-06-11 02:56 수정 : 2021-07-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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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5일 미국 조지아주의 지역 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이 캠페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가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트럼프 지지를 숨기는 ‘샤이 트럼프’ 현상이 주목받았다. REUTERS

선거 때 ‘샤이(Shy) 지지층’이 존재한다거나 경선 방식과 관련해 역선택이 우려된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선거가 끝난 뒤 결과를 보면 이런 얘기를 꺼낸 쪽이 대개 진다. 이런 지적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에서 밀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재보궐선거 ‘샤이 진보’의 반란은 없었다
한국에선 2016년 하반기 특수한 성격의 정치적 지지층을 설명하는 단어로 ‘샤이’가 처음 등장했다. 국정 농단 논란으로 탄핵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숨은 지지층이 있다는 의미에서 ‘샤이 박근혜’가 탄생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샤이 트럼프’가 조명받았고, 우리 언론에서 그 용어를 가져왔다.

이후 ‘샤이 보수’가 한동안 쓰이다가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는 ‘샤이 진보’도 언급됐다. 당시 여당이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크게 뒤처지자 지지층의 낙담과 이로 인한 투표 불참을 막기 위해 이를 거론했다. 최근엔 유력 대선 주자로 올라선 인물 이름 앞에 샤이를 붙인 ‘샤이 이재명’ ‘샤이 윤석열’ 등의 제목을 단 기사마저 나온다.

역대 선거에서 샤이 논의는 무성했지만 샤이층의 유의미한 반란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샤이층 용어의 생명력은 지속되고 있다. 마치 요술방망이처럼 전망과 분석에 쓰인다. 샤이층의 향방이 최대 관건이라고 얘기하며 이에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또 선거 결과가 예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샤이층이 움직였다고, 여론조사와 유사하게 나오면 샤이층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석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격이다.

샤이는 자기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의미한다. 평소 여론조사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지 않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기표소에 가서는 애초 자신의 본래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지지 대상을 공개적으로는 밝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니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거나 기대할 때 유용한 ‘이론’이 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학적이지 않고 과잉 의미 부여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할 정도인데, 단순히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행동의 표출인 투표에 참여한다는 건 매끄럽지 않다. 혹자는 ‘침묵의 나선 이론’을 들어 샤이를 옹호한다. 솔직한 의견을 내보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때 대중이 침묵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적용해볼 수 있는 이론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지지층의 투표 적극성이 결과 좌우
여론조사 방식에 따른 응답 결과 차이를 근거로 샤이층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응답자가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전화면접조사와 기계가 면접원 역할을 대신하는 자동응답시스템(ARS)조사의 결과가 다를 때가 상당히 많다. 자동응답시스템에선 면접원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하게 응답함에 따라, 샤이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유의미하게 존재한다고 볼 증거는 없다. 자동응답시스템조사와 전화면접조사의 응답자 특성이 정치에 대한 적극 관심층인지, 소극 관심층까지 포함한 것인지 다르기 때문이지 솔직한 응답 여부의 차이 때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표본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것이지, 전화면접조사에서만 솔직한 응답을 못해 다르다고 볼 수 없다.

샤이층 인정은 이른바 ‘여론 고정설’에 기반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이 애초 결정됐고 생각의 변화는 없으며 결국 선거에선 처음 성향이 표출된다는 주장이다. 개인적 특성과 경험으로 높은 일관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시기, 사안, 상황에 따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아주 많다. 이들은 중간층·중도층·부동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만약 여론이 고정됐다면, 또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이 고정됐다면 선거운동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누구보다 대중에 민감한 정당들이 선거 캠페인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는, 여론이 고정불변하지 않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장하고 상대방 지지를 축소하려는 캠페인이 실제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매번 체감적으로 확인한다.

샤이 트럼프 현상이 실제 있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다. 트럼프의 2016년 미국 대선 승리는 샤이 현상이 아니라 ‘지지층의 투표 적극성’으로 봐야 한다. 당시 트럼프 지지자의 투표 참여 의지가 더 강했고,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유권자 중 단순 지지층 규모는 힐러리가 더 컸지만, 실제 투표장에 간 사람 중에선 트럼프 지지자가 더 많아서 나타난 결과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듯이 누군가의 당선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투표장에 더 적극적으로 나가게 된다. 트럼프가 해외 노동자 유입을 막아 백인 노동자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이로 인한 수혜층이 투표에 더 열의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과거 국내 선거에도 있었고 이를 ‘숨은표’라고 불렀다.

여론조사 탓? ‘낮아진 성적표’ 받아들여야
높은 지지율을 오랫동안 얻어온 인물이나 정당이 어느 순간 낮아진 지지율을 얻을 때는 샤이층을 거론하며 외면할 게 아니라 대중의 ‘평가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론조사가 부정확하다고 할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변화된 대중의 인식 결과라고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정치 주체가 스스로 샤이 지지층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샤이층이 존재한다고 인정해버리면 정상적인 정치가 멈춰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어느 정권이든 실정이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당이든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지가 떨어지고 평가가 나빠질 수 있다. 이를 두고 자신들의 지지층이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아서, 다시 말해 샤이 지지층이 있기 때문에 그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해버리면 합리적인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결정하고 실행하고 평가받고, 그 성적표를 인정하고, 이에 반응하는 메커니즘이 정치권에서 작동해야 하는데 샤이층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순간 그 흐름이 깨져버린다. 샤이층을 거론하는 것에 정치권이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는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파헤쳐 정확하게 여론 읽는 법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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