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다시 여론조사가 빈번해지고 있다. 대통령선거 때는 중앙 언론사 중심으로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가 주로 실시되고 보도됐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조사가 있다. 대선은 1명을 뽑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시도지사 17명, 구시군의 장 226명, 시도의회 의원 737명, 구·시·군의회 의원 2541명, 광역의원 비례대표 87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386명, 광역자치단체의 교육감 17명, 교육의원 5명 등 총 4016명을 뽑는다. 여기에 공석인 국회의원 지역구의 재보궐선거가 추가된다. 그만큼 여론조사 수요도 넘친다.
선택해야 할 대상이 많은 만큼 유권자는 후보자들을 꼼꼼히 알기 어렵다. 사람의 관심이라는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개 광역자치단체장이나 기초자치단체장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다른 선출직 후보들의 정보는 잘 습득되지 않는다. 교육감 후보도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가려진다. 그러다보니 깊은 검토와 고민 없이 동일 기호 후보들을 선택하는 이른바 ‘맹목적인 줄투표’(Blind Straight-Ticket Voting) 현상도 나타난다.
대선 직후 치러지는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대중의 관심을 얻기가 더 어렵다. 새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더 심해진다. 미디어도 지방선거보다 새 정부 출범 사안을 더욱 비중 있게 보도하게 된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데 정보 자체가 적게 제공되므로 유권자의 지방선거에 대한 정보 문턱은 높아진다.
이렇다보니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자신을 알리는 데 곤경을 겪는다. 일반적 선거운동으로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출마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에 좀더 수월한 방법을 찾게 되고, 그나마 대중적 주목도가 있는 여론조사를 활용한 선거운동에 현혹된다. 지역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에 드는 결과를 얻어내 이를 유권자에게 알려 자신이 유력한 후보라는 점을 부각하려 한다. 초반에 유력 후보로 인식되지 않으면 소속 정당의 경선 통과도 어렵기 때문이다.
요사이 주로 활용되는 방법은 지역 언론사에서 하는 여론조사에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해 높은 지지율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이를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실시되는 날짜, 시간대를 미리 알아내 문자메시지로 미리 지인들에게 알려 조사에 응답하게 한다. 조사기관들이 주로 서울에 있으므로 02로 시작되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꼭 받아달라고 한다.
지역 언론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 정보를 후보들이 어떻게 아는지 의문이다. 조사가 이루어지는 날짜와 시간대를 알리면서 조사 참여를 호소하는 것은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한다. 모든 응답자가 동일한 확률로 표집돼야 무작위 조사가 되고 결과가 정확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조사 전화를 받을 준비를 한 특정인의 참여율이 높아져 표본의 대표성이 훼손된다.
주소지 옮겨 응답하는 불법 시도도불법적 시도도 나타난다. 대개 언론사에서 여론조사를 할 때는 통신사에사 받은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다. 이때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 주소를 기준으로 해당 지역 유권자인지 구분하는데 이를 이용해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요금 청구서 주소를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으로 옮겨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해당 지역 유권자가 아니지만 해당 지역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A지역에 거주하는 황아무개씨는 1월 중순께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B지역으로 옮겨달라는 지인의 부탁과 함께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가 오면 B지역 자치단체장 후보로 거론되는 특정인을 지지해주면 된다는 요청을 받았다. 요금 청구서를 옮긴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지 않은 2월20일 실제 황씨는 지역 언론사가 실시하는 B지역 선거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2022년 4월4일 <아시아경제> 보도).
과거 집전화를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이루어질 때 집전화를 다수 개설해 한 사람이 여러 명 몫의 여론조사에 참여해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함으로써 지지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문제가 된 ‘유선전화 착신전환’ 사례의 변용으로 선거법 위반이라 할 수 있다.
선두그룹에 포함될 것 같은 일부 후보는 지역 언론사에 조사를 요청함으로써 선거운동 초반 대세론을 미디어 결과를 통해 확산시키려는 경우도 있다. 후보들은 자체 여론조사를 할 수는 있지만 현행 선거법상 공신력이 있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조사를 하지 못하고 공표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언론 조사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본인이 우세 후보라는 점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 그만큼 선거운동 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실시된 이후에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온 조사 결과를 지역 유권자에게 알리는 일에 집중한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문자메시지, 채팅방 등이 동원된다. 정작 중요한 공약이나 정책 비전을 알리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렇듯 최근엔 여론조사가 선거운동의 중심이 돼버렸다. 어떻게든 상위권에 진입한 결과를 확보하고 이를 다른 무엇보다 많이 알려서 본인이 ‘가능성 있는 후보’라는 점을 어필하는 게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의 제약, 각 정당의 경선에서 여론조사가 50%가량 포함되는 흐름과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출마한 후보들이 어떤 사람인지, 자치단체의 행정을 맡길 만한 준비가 돼 있는지, 당선되면 무엇을 하려는지, 해당 지역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알 기회는 줄어든다. 후보들을 그저 알려진 여론조사 지지율로 인식하고 평가하게 된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의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론조사가 선거운동 도구로 전락하면서 후보자와 유권자의 상호 소통이라는 선거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다. ‘여론조사상 유리한 지지율 획득과 홍보 경쟁’으로 변질된 선거운동에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여론조사의 악용을 차단하고 출마자가 건강한 선거운동을 통해 유권자와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파헤쳐 정확하게 여론 읽는 법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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