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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여론 읽기

중도는 허상인가

모든 사안에 일관된 중도층은 없어… 변덕스럽지만 선거를 지배하는 건 중도 민심

제1384호
등록 : 2021-10-17 18:15 수정 : 2021-10-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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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중도 표심’이 어느 쪽에 쏠릴 것인지 묻는 각종 여론조사와 전망이 뉴스를 장식한다. 유튜브 갈무리

여론조사 보도에서 종종 성향별 여론 결과를 접하게 된다. 전체 조사 결과와 함께 진보 성향층과 보수 성향층 그리고 중도 성향층에서는 어떤 의견인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중도층 민심이 전체 여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와 관련해 추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연 중도는 누구인지, 이들을 단일한 그룹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중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나 하는지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각 진영을 대표해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 중 일부는 “중도는 없다”고도 단언한다. 중도라는 표현은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허상이기에 중도층 공략이니, 중도를 잡아야 승리한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고 힘주어 얘기한다. ‘중용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정서가 더해져 과도하게 다뤄진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론 ‘평균값’이면 중도
실제로 중도는 모호하다. 이념적으로 중도 성향을 갖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 중도의 실체를 부정하는 쪽은 나름의 논거를 내놓기도 한다. 가령 낙태와 관련해 낙태를 절반만 할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한다. 찬성과 반대 입장만 있지 중간 입장을 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도 지향성을 갖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모든 쟁점 사안에 대해 정확히 중간 지점을 추구하는 일은 현실에서 나타나기 어렵다.

학문적으로 이념 성향을 구분하는 연구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도 그룹을 분류할 때 진보와 보수의 의견 대립이 있는 여러 사안에 대해 질문하고 각 답변의 값을 모두 더해 평균을 내어 중도층을 분류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에 대해, 또 의료 민영화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다. 그리고 ‘매우 찬성’ ‘대체로 찬성’ ‘보통’ ‘대체로 반대’ ‘매우 반대’로 선택지를 제시하고 1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긴다.

중도라고 하면 모든 이슈에 보통이라는 응답을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이슈에는 찬성, 다른 이슈에는 반대 응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종합해 평균을 내서 3에 가까우면 ‘중도층’이라고 분류한다. 모든 사안에 일관된 성향을 보이는 중도층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여론조사 보도에 나오는 중도층 분류는 이런 학문적 성격의 연구와는 다르게 이뤄진다. 통상 여론조사는 문항 수의 제약이 있다. 이념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문항을 묻기 어렵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 이념 성향을 분류한다.

‘귀하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다음 중 어디에 해당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 선택지로는 ‘진보’ ‘중도’ ‘보수’가 제시되는데 응답자들이 자유롭게 정한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념 성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론조사 방법론은 ‘응답자들이 모든 걸 안다’는 전제 아래 이뤄지긴 하지만 정보는 언제나 제약되고, 사람은 완전합리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당시 판세를 분석하는 뉴스의 헤드라인들. 유튜브 갈무리

보수적 진보·진보적 보수의 역설
자신을 스스로 진보라고 하지만, 어떤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적 의견을 내보일 수 있다. 반대로 보수라고 생각하지만 진보적 의견에 공감을 표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한 조사에서는 국영기업 민영화에 대해 스스로 보수라고 밝힌 사람 중 41.6%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 자신을 진보라고 한 응답자의 55.7%는 찬성했다(2006년 국민 이념성향 조사,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일반적인 여론조사에서 이념 성향은 이처럼 엄밀하지 못하다. 비교적 선명한 지향성을 보이는 진보와 보수에서도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는데 중도는 말할 것도 없다. 여론조사에서 이념 성향은 보조적 지표로만 활용해야 한다. 이를 이념 성향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한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 이념 성향’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중도는 매끄럽게 파악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와 선거에서 중도는 실체가 없고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선거 결과가 절대적으로 영향받기 때문이다.

중도가 없다고 가정하면 진보와 보수만 남는 셈인데, 그러면 선거 결과의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미세한 변화만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역대 선거에서 현저한 결과 변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때그때 의견을 바꿔가며 표출하는 유권자는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특히 대선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 즉 진보와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만 투표하는 게 아니다. 투표율이 70%를 넘는다는 것은 정치적 이념 성향이 좌우로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 중도라고 부르는 유권자도 대거 투표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고정적 성향이나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아 변덕스럽지만,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는 것에 경계심을 갖고 거부감을 표현하고, 신뢰를 주는 사람에게 호응하고, 후보나 정당의 태도를 중시하며, 실생활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특성을 지닌 중도층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사람들이 있다.

소선거구제에선 중도층 과소평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중도층이 과소평가되는 배경에 선거제도 요인도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소선거구제와 단순 다수대표제는 양당제를,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공고히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의 소선거구제와 단순 다수대표제로 인해 중도층은 선호하는 정치세력을 만날 기회가 제약되고 있다. 의미 있는 정당이 여러 개 있다면 중도층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비례적 선거제를 도입하더라도 2020년 총선처럼 위성정당 설립이라는 퇴행적 운영이 돼선 안 되겠지만 말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특정 중간만을 고집하는 중도층은 없다. 하지만 한쪽만을 고집하지 않는 중도층은 늘 존재한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여럿 있다면 중도층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결정권은 이들 중도층이 지니고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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