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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 안 받는데 여론조사 어떻게

무응답 늘어나 투입비용 증가, 빅데이터의 거센 도전까지… 환경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등록 2022-05-12 00:24 수정 2022-05-12 10:14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 류우종 기자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 류우종 기자

선거 때면 넘쳐나는 후보 지지율 기사로 여론조사 전성시대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론조사의 앞날은 그렇게 밝지 않다. 지금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면접원이 응답자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는 전화면접조사인데 이런 방식이 지속가능한지에 회의적 시각이 강하다.

답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여론조사

여론조사가 위기인 첫째 이유는 여론조사기관이 조사를 수행하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여론조사 실시 비용이 고조되고 있다. 비용은 단지 금전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원활한 조사의 기본 조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는다. 발신번호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이런 무응답이 많아지면 조사기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조사를 끝내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기 어려워지고, 투입인력이 많아지면서 투입비용도 커진다.

공표를 목적으로 하는 선거 조사에서는 이동통신 3사에서 휴대전화번호를 받아 조사할 수 있게 돼 각 지역이나 연령대의 응답자를 찾아내는 어려움이 다소나마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자기 번호를 비록 안심번호로 전환하더라도 빈번하게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차단을 신청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또 사회적인 요구가 나타나 휴대전화 가입자에게 조사하려면 일일이 사전에 개인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제한이 더해질 수도 있다.

다음으로 조사를 위기에 빠뜨리는 배경에는 빅데이터의 거센 도전이 있다. 지금의 조사 방식, 즉 ‘응답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답을 얻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까지 더해진다. 여론조사는 의사결정자의 직감이나 주변 소수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체 사람의 마음을 파악해보는 분명 과학적인 기법이었다. 이런 과학적 방식의 여론조사가 빅데이터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그저 묻고 답을 얻는다. 응답자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소득수준이 어떠냐고 묻고 답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외국여행을 얼마나 자주 가냐고 묻고 답하는 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응답자가 말하는 모든 것을 사실로 간주한다. 거짓말해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지금의 여론조사 방식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다.

정확성과 심층성을 더한 빅데이터의 공세

빅데이터는 이런 문제를 해소한다.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온라인쇼핑 포털이나 신용카드 사용자 또는 거대 배송업체 이용자를 대상으로 해당 플랫폼에서 또는 연결된 곳에서 조사한다고 생각해보자. 각 사람이 실제 어떤 행동 유형을 보이는지 알고 있다. 월별, 주별, 일별 카드 사용액이 얼마이며 어디에 돈을 많이 쓰는지, 외국에는 얼마나 자주 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거짓이 없다. 이에 견주면 여론조사는 오히려 주먹구구식이다.

개인 상세 데이터를 지닌 곳에서 여론조사를 해 다양한 사회 현안을 묻고 답을 얻을 수 있다. 규모가 크면 조사의 대표성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실제로 외국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들이 갖는 인식의 파악, 카드 사용액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교 등이 훨씬 정확해진다. 당연히 데이터 가치도 높아진다.

대중이나 소비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 결과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단순 여론조사보다는 빅데이터와 결합한 조사 결과를 원하게 된다. 이미 통신회사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응답자 개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화하는 작업이 적용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임 자회사인 엑스박스(XBox)는 게임기 사용자가 다양한 여론조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전자기기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므로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과 이동 차량 등을 통한 조사 가능 환경 구축은 앞으로 수월해질 것이다. 각종 개인적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조사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과연 여론조사와 리서치가 심층성을 더한 빅데이터 영역의 공세를 방어해낼지 의문이다.

굳이 모든 사안을 국민에게 물어야 하는가

마지막 위협은 조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한 것이다. 기존 여론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함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꼭 정치적 사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전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사안이 아니더라도 여론조사는 전 국민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모든 국민에게 대표성 있게 물어야 하고 그 의견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컸다. 그런데 사회가 다양화되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다양화되면서 사람들이 모든 사안에 대한 정보나 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답하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기 힘들고 오히려 해당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여론조사 방법론은 사람들이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고 최적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데 실제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따라서 모든 사안을 모든 국민에게 묻는 과거의 여론조사 방식이 적절한지 논의가 있다. 최근 공론조사도 그런 의문의 대안을 논의한 결과다. 어떤 사안의 관심자들에게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 뒤 토론과 숙의를 거쳐 이들에게 조사하는 방식이다. 특정 사안의 이해와 관심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먼저 살피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토론과 논의를 시작하는 방식이, 모든 사안을 전 국민에게 조사하고 추가 논의를 차단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낫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이런 관점이 강화되면 전통적인 전 국민 전화조사 방식은 효용성이 낮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여론조사를 불신하지만 국민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여론조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기류가 강한 편이다. 매번 투표할 수 없는 일이므로 여론조사는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할 것이다. 다만 최근 환경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기존 여론조사는 제 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 칼럼을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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