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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집에 전화 거는 공공기관 여론조사

공직선거법으로 정당·언론만 휴대전화 가상번호 사용 가능, 정책 수립 위해 도입 확대해야
등록 2022-04-06 16:12 수정 2022-04-07 02:10
한 시민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실내 공원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시민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실내 공원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여론조사는 휴대전화번호를 대상으로 주로 실시된다. 집전화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사라지고 있다. 집전화가 없는 가구가 많아지면서 집전화만으로는 전체 모집단을 포괄하지 못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집전화로 선거 조사가 진행됐는데 당시 선거 결과와의 불일치가 워낙 컸고 이후 휴대전화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규정이 정비됐다.

이제는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대세가 됐다. 휴대전화번호는 이동통신 3사(SKT, KT, LGU+)로부터 050으로 시작하는 가상번호로 변환해 제공받아 실시한다. 이동통신 가입자들의 실제 전화번호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안심번호라고도 부른다.

무작위 걸기로는 지역 표본 찾기 한계

그런데 정확도가 높다고 인정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여론조사를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당이 실시하는 때와 언론 등을 통해 공표하려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공직선거법 제57조에서는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이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108조에서는 공표 또는 보도를 목적으로 할 경우 이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 외에는 통신사로부터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신청할 수도 이용할 수도 없다. 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필요한 곳은 정당과 언론만이 아니다.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도 정확한 여론 파악이 필요하다. 그 외 많은 공공기관도 관련 이슈나 정책 결정을 위해 정확한 여론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하다.

가령 어느 광역자치단체가 중요한 정책 수립을 위해 여론조사를 할 때 정확성이 높은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할 수 없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패널들의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패널 규모가 지역 단위에서는 작은데다 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대표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문제가 있다. 결국 집전화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집전화를 보유한 가구는 해당 지역 가구 중 일부에 그치고, 요즘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아졌는데 이들은 대부분 집전화를 갖고 있지 않아 원천적으로 배제되면서 조사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진단이 정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도구인 여론조사가 부실하니 진단은 물론 해결책도 불완전해질 위험이 있다. 모든 공공기관이 이런 제약 상황에 처했는데 특히 지역 단위에서 행정을 펼치는 지자체에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또 선거 캠페인 전략을 수립할 때 우선 지역 유권자 여론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휴대전화 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불가하다.

전국 단위 조사일 경우 휴대전화 가상번호가 아닌 조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휴대전화번호를 생성해 이용하는 이른바 휴대전화 무작위 걸기(RDD, Random Digit Dialing) 방식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RDD 방식은 상당수 결번이 존재하고, 선거권이 없는 만 18살 미만 등도 포함돼 이를 구분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고 이에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또 강원이나 제주 등 인구가 적은 지역의 특정 연령대 표본을 찾아내는 데 장애가 있다.

공공재를 ‘공공’재답게

전국 조사가 아니라 광역자치단체나 기초자치단체 등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여론을 살펴볼 때 휴대전화번호만으로는 특정 지역 거주자를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일단 전화를 걸어 일일이 해당 지역 거주자인지 물어야 한다. 이론상 이런 방식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조사는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신속성과 경제성도 무시하지 못하는데 정해진 시간과 예산 제약 내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없다.

반면 휴대전화 가상번호는 이동통신사로부터 해당 번호 가입자의 지역, 성, 연령 정보를 함께 받을 수 있다. 일정 사용료를 내야 하지만 조사가 훨씬 수월해진다. 세부 지역, 연령과 성에 따른 표본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모집단 전체에 대한 대표성도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지역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으므로 자치단체에서 특정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조사도 가능해진다.

여론조사에 불신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조사가 가능해지면서 과거보다 정확도가 오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동통신사 표본추출 틀을 동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조사 품질도 제고됐다. 각 조사기관의 질문 이슈 선정, 설문 문구 구성, 면접원 숙련도 등에 따른 특성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주는 조사기관의 고유한 경향을 의미하는 기관효과(House Effect)가 여전히 있지만 표본에서 발생하는 결과 차이는 상당히 줄었다.

여론조사는 일종의 공공재적 특성을 지닌다. 좋은 조사 결과는 공유되면 좋고 또 좋은 조사 결과가 나오는 방식도 널리 적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는 정당과 공표하는 언론만 특혜를 받고 있다. 정작 국민 실생활 실태를 그 어디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에는 정확한 민심 파악을 불허하는 셈이다.

휴대전화 가상번호 여론조사를 확대하는 데 우려의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휴대전화번호 노출을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반대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했듯 실제 번호가 아니라 유효기간이 있는 안심번호로 변환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거 조사 횟수를 제한하는 방법도

다만 휴대전화로 과도한 여론조사가 걸려오면 가입자들의 불편과 불만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는 새길 만하다. 현재도 가입자들에게 가상번호로 여론조사가 실시될 수 있고 원하지 않을 경우 가입시 제외될 권리를 주지만, 이를 더 분명히 인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선거 조사에서는 횟수를 제한하는 방법도 적용할 수 있다. 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료를 더 높여 받더라도 그 혜택이 가입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사회와 지역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민심의 정확한 파악이 필수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정부부처와 지자체가 정확한 여론조사가 아닌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집전화 조사를 하게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현재 공직선거법에서만 휴대전화 가상번호와 관련해 규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여론 파악은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의 여론 읽기: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파헤쳐 정확하게 여론 읽는 법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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