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없다면 일반 대중은 여론조사 결과를 접하기 어렵다. 대중이 여론조사 업체에서 직접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받는 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중간에서 유통자 구실을 담당한다.
유통 문제는 여론조사 분야에서도 발생한다. 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대중에게 전달하면 되는데 우리 언론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양념을 더하기도 한다. 상품의 과대포장처럼 그럴싸하게 치장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소비자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여론조사의 문제는 여론조사 보도 문제이다.
여론조사 보도 문제는 크게 매체의 정치적 특성으로 인한 측면과 기사에서의 비과학적인 보도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미디어가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예는 발표된 여론조사를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경우이다. 언론사는 편집권이 있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입맛에 따라 보도할 때가 많다. 특정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언론사 성향에 따라 보도하는 곳과 보도하지 않는 곳이 다르다. 특정 후보나 진영에 유리한 여론조사만 보도하는 매체가 적지 않다. 최근 전화면접조사인지, 자동응답방식(ARS) 조사인지에 따라 여야 후보들에게 유불리가 뚜렷한데 어느 한쪽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여론조사 중에서 취사선택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조사 결과 내에서도 특정 문항만 보도하기도 한다. 대개 대중의 마음은 이중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래서 하나의 여론조사에서도 대중은 다양한 속내를 드러낸다. 가령 북한의 도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반면 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런 여러 문항을 입체적으로 질문해 결과를 내놓지만 언론사에서는 하나만 택해 보도함으로써 대중이 어느 한 방향의 의견만 지닌 것처럼 호도한다.
제목에서 의도를 드러내는 일도 많다. 해당 기자나 언론이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인 양 제목에 해당 결과의 이유를 적는다. 인터넷을 통해 언론기사를 소비하는 요즘 대중은 넘쳐나는 기사에서 제목만 읽는 행태가 많은데 기사 제목에서 조사 결과의 일부분인 이유를 전체 의견처럼 확정적으로 보도해버리면 그렇지 않은 이유 분석은 배제돼 바른 정보 전달이 되지 못한다.
여론조사 결과의 이유나 배경은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 해석이나 추정될 수 있을 뿐이다. 결과의 이유를 명확히 보도하려면 해당 조사에서 찬성이나 반대 이유까지 물어 답을 얻은 경우에만 할 수 있다. 그런 보조 문항이 없을 때는 기사 본문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관련자나 전문가 의견으로 담으면 되는데 처음부터 제목에 이유를 달아버리는 것은 객관적 보도가 아니다.
제목에 ‘역시’ ‘여지없이’ 등 주관적인 표현을 쓰는 것도 위험하다. 언론사가 준수해야 하는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19조는 주관적 표현 자제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의외의’ ‘예상을 넘는’ ‘기대에 못 미치는’ 등 주관적일 수 있는 표현은 가급적 자제한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주관적인 견해나 판단을 보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편향된 일반화, 오차범위 무시한쪽 입장만 따옴표를 사용해 부각하기도 한다. 대개 여론조사에서는 선택지가 균형 있게 제시돼 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쪽 선택지만 콕 집어서 수치와 함께 제목으로 삼는 경우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에 표 주면 안 돼, 40%” 이런 식의 기사 제목이다. 특정 이슈에 대해 국민 여론이 압도적이라면 모를까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제목을 제시하면 독자에게 편향된 정보만 제공하는 셈이다.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 여론조사에서도 횡행한다.
다음으로 과학적 여론조사를 비과학적으로 보도하는 사례들이다. 먼저 표본오차(오차범위)를 무시하는 일이다. 조사개요를 보면 오차범위가 있다. 1천 명 조사일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라고 대개 적는다. 여기서 오차범위의 의미는 해당 범위 내의 결과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6.2%포인트 내의 차이라면 의미를 적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기사에서는 2%포인트나 3%포인트 정도 차이가 나도 이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한다. 누가 1위이다, 앞섰다, 우세하다, 승기를 잡았다, 치고 나가고 있다, 추월했다 등의 표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표본오차를 기사에서 적어놓고 오차범위를 무시하는 것은 마치 사건사고 기사를 전하면서 “차량 추돌사고가 일어났는데 운전자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쓰는 것과 같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별, 세대별 세부 분석도 곁들인다. 오차범위는 전체 결과 그러니까 1천 명이 모두 응답한 결과에만 해당한다. 전체 결과가 아닌 하위 응답 그룹에서는 표본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표본오차도 더 커진다. 대개 1천 명 조사이면 호남이나 충청, 대구·경북은 표본수가 100명 내외이다. 이 경우 표본오차는 ±10%포인트 정도이다. 이는 20%포인트 이내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10%포인트 차이만 나면 굉장한 일이 발생한 것처럼 기사를 낸다.
다음으로 조사방식을 무시한 추이 비교이다. 다른 조사기관에서 다른 조사방식을 적용한 것인데도 서로 비교한다. 방식이 다르면 다른 조사이고,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래프로 오해를 사는 사례도 있다. 각 응답의 수치를 시각화할 때는 비율을 맞춰야 하는데, 실제보다 차이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일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중간 선택지를 갖고 정교하지 않은 보도를 하는 사례도 많다. 만약 원전 관련 조사에서 확대와 축소 외에 유지라는 중간 선택지를 제시해 조사해놓고서 보도할 때는 중간의 ‘유지해야 한다’를 확대나 축소 쪽으로 묶어 보도하는 경우이다.
사실 이러한 사항을 언론사는 누구보다 잘 안다. 알면서 반복한다. 선거가 끝나면 언론사는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 심층보도를 내보내곤 한다. 매 선거가 끝나면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좋은 품질의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언론이 감시하고,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가 아니라 조사 저널리즘에 맞게 보도하면 여론조사 질도 높아지고 대중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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