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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추석 여론장은 없다

과거 명절은 대권주자 지지율 변곡점… 2021년 추석엔 여론 ‘장터효과’ 약할 듯
등록 2021-09-22 18:11 수정 2021-09-23 02:52
2021년 9월1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지식포럼 개막식에서 만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동취재사진

2021년 9월1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지식포럼 개막식에서 만난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동취재사진

추석이나 설이 되면 미디어에서는 ‘명절 민심’이라는 꼭지로 제법 비중 있게 기사를 내보낸다. 명절 밥상머리에 올려질 정치 이슈에 대해서는 여야 유불리를 분석하며 다양하게 풀어놓는다. 명절을 맞아 정치권도 민심 잡기에 나섰다고 하면서 귀성객이 몰리는 서울역이나 고속터미널에 나가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전단을 나눠주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석 직후 이명박·안철수 돌풍

명절 민심은 정말 특별할까. 한때 명절이 여론의 주요한 변곡점이 되는 때가 있었다. 이른바 여론의 ‘장터효과’가 명절 연휴를 거치면서 나타났다. 명절에는 지역과 세대가 섞이게 된다. 고향을 떠나 전국 다양한 곳에 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모인다. 또 젊은 자녀가 부모나 나이 든 어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주고받게 되고, 연휴가 끝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전국적 여론이 형성될 환경이 만들어진다. 흡사 예전 시골에서 며칠에 한 번 열리던 장터와 비슷해진다. 장이 서서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얘기를 주고받다보면 금세 소문이 퍼지게 된다.

명절을 거치면서 의미 있는 여론의 변화가 있던 시기는 대표적으로 2006년 추석이 꼽힌다. 이때는 2007년 12월 대선으로부터 14개월 전이었다. 당시에는 야당이던 한나라당 소속 2인의 경쟁이 치열했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 후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추석 전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추석 직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변화가 있었다.

추석 전인 2006년 9월25일과 26일 실시된 조사에서는 박근혜 25.4%, 이명박 25.2%, 고건 22.8%였다.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거의 동률이었다. 그런데 추석 직후인 10월9일과 10일 조사를 보면 박근혜 후보는 22.6%로 정체를 보였는데 이명박 후보는 34.1%로 거의 10%포인트 상승했다. 고건 후보는 17.6%로 낮아졌다(리얼미터).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버스전용차로제 시행, 청계천 복원 등의 성과가 있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이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었는데 서울에 살던 자녀들이 지역의 부모들께 이를 자세히 전하면서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가 확산했다고 대체로 얘기된다.

2012년을 앞둔 2011년 추석도 명절 민심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이른바 ‘안철수 돌풍’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 자리를 양보한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에게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몰렸다. TV나 종이신문 등 이른바 올드미디어만이 정보 매체의 전부이던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정보 격차가 발생할 수 있었고, 명절은 이 격차를 해소해주는 구실을 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9월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발표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홍준표 의원(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공동취재사진

9월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발표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홍준표 의원(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공동취재사진

지역·세대별 정보 격차 줄어

지금은 어떨까.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갖고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장년과 고령층이 어쩌면 더 많은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온라인은 60살 이상에서도 접근이 어려운 도구가 아니다. 유튜브 시청도 고령층에서 많은 편이다. 굳이 고향의 어르신이 젊은 자녀로부터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선거 국면에선 명절 연휴라고 해서 특별한 여론의 형성이나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지역별 순회 방식으로 실시되는데 이 역시 지금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지역별 민심이 현저히 크다는 인식에서는 활용할 만하지만 정보 유통에 막힘이 없는 시대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 권역별 결과도 지역별 특성이 도드라지게 나오지 않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지역별 정보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족이 대규모로 만나기도 어렵고, 가족이 만나더라도 정치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번 추석이 내년 대선을 앞둔 중요한 시점이긴 하더라도 이른바 장터효과는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이 지나면서 여론에 어떤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또 그것을 두고 명절 연휴로 여론이 변했다고 누군가 얘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명절 효과라기보다는 이미 그 전의 흐름으로 변화가 이어지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명절 연휴 기간에는 특별한 정치·사회 이슈가 불거지지 않는다. 정치권도 쉬고, 미디어도 연휴 기간에는 전반적으로 소극적인 일상 보도나 그 이전 사안에 대해서만 주로 보도한다. 오히려 명절 연휴가 아니라 사회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평일에 더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명절 민심’은 ‘제목 장사’

방송에서는 ‘명절 민심’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여론조사를 실시해 내보내기도 한다. 명절 연휴가 시작될 즈음 보도한다. 실제 조사는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한다. 정말 ‘명절 민심’이 중요하다면 명절 연휴가 지난 뒤 조사해야 한다. 명절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명절 민심’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명절 밥상머리 민심이니, 명절 민심 잡기, 명절 여론이니 하는 말은 이제 언론의 제목 장사이자 마케팅이 되어버렸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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