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창광 기자
“사제에게서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찍이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에 한 말이다. 정치인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나야 할까. 나는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에게서 어렴풋이 맡았다. 땀내다.
2020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증권의 위법행위에 대해 최대한 서둘러 조처하겠다고 답변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삼성증권이 직원들을 시켜 삼성물산 주식을 가진 고객들을 어르고 구슬려 합병에 우호적인 지분으로 삼으려 한 것과 관련해서다. 그러고도 모자라 고객 정보를 삼성물산과 주고받았다. 명백한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금융 당국이 금융기관의 위법행위를 관리·감독하고 행정조처를 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은 게 ‘삼성공화국’의 현주소다. 이번 내용도 이미 5년 전 금융감독원에 민원으로 접수된 적이 있다. 여태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관련 내용이 담긴 검찰 공소장을 들이밀자 원론적인 답변이나마 내놓은 것이다. 특히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1대 국회 들어 삼성 관련 질의를 받을 때마다 참으로 독특한 태도를 취했다. 얼버무리기, 모르는 척하기, 급기야 못 들은 척하기까지. 이 과정에서 ‘입법 노동자’ 박용진이 보인 근면성실함은 발군이었다. 입법이 미비하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재판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는 판에 박은 핑계가 나올 때마다 진작부터 있던 관련법과 당국의 책임과 권한을 무한 반복으로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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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프’(성능 하향)된 상대를 ‘버프’(능력 상승)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 사실 보통의 직장인이나 돌봄노동자는 매일 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이 저러다 원형탈모가 생기지 않을까 싶게 끈질기게 용쓰는 모습을 보는 건 썩 괜찮은 경험이다. 그가 21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대변인을 한 덕에 얼굴이 많이 팔려 그렇지 박용진은 고작 5년차 국회의원이다. 이건희 차명계좌 4조5천억원 금융실명법 위반 확인(2017년), 회계부정 근절 등을 위한 유치원 3법, 일명 박용진법 발의(2018년)로 연속해서 국정감사를 ‘찢을’ 때도 2년차, 3년차 초선 의원이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했던 ‘경제를 잘 아는 70년대생’은 박용진이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무럭무럭 자랐다.
게다가 그는 자력으로 컸다. 2011년 진보신당 일부와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합칠 때 야권 대통합을 내걸며 노선을 달리했다. 국민승리21 시절부터 ‘남다른 떡잎 삼총사’로 함께 의자 날랐던 김종철 정의당 대표, 신장식 변호사 등과도 이때 헤어졌다. 박용진은 시민통합당을 만들어 민주통합당으로 합했고 그게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다. 그의 행보에는 당 지지자들의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열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않는 발언 탓이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의힘으로 가버리라는 욕은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오랜 동지들이 ‘진보’에 방점을 찍을 때, 그는 ‘정치’에 방점을 찍었다. 밥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그릇이든 밥을 지어 담아 나눠 먹는 게 정치라고 믿는다. 그렇게 반보라도 나아가는 게 진보라고 여긴다. 그는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연설하다 연행됐다. 하필 그날 잡혀온 이 중 제일 ‘높은 직함’(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을 달고 있던 터라 그길로 긴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가 있던 서울구치소의 독거 운동장에는 부러진 대걸레 자루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통일운동가 임동규씨는 그걸로 전통 무예를 연마했다. 전직 국회의원은 골프 연습을 했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용진은 모포를 털었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루 하나도 쓸모가 달라졌던 셈이다. 우리 정치의 ‘박용진 사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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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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