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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법을 만들 수 있다…국민동의청원 활용법

‘엔(n)번방 사건 재발방지법’이 ‘국민동의청원’으로 시작해 개정안이 될 때까지
등록 2020-05-26 02:54 수정 2020-05-29 11:06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갈무리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갈무리

국회는 4월29일 본회의를 열고 ‘엔(n)번방 사건 재발방지법’으로 불리는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전히 디지털성범죄를 막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디지털성범죄에 무지했던 국회가 관련 법안을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해 본회의 표결에 부치기까지 1월10일 새롭게 문을 연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세 건의 청원이 디딤돌을 놨다.

청원 2건 내용 추가 반영해 통과시켜

그동안 국회 청원은 ‘의원 소개’로 청원서를 문서로 제출하는 방식이라 ‘보통 사람’들에게 문턱이 높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2020년에야 온라인 청원 시스템의 문을 열었다. 국회 청원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입법 논의를 끌어낼 수 있다. 21대 국회에 국민의 목소리가 좀더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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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5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양형 기준을 설정할 것’ 등의 요구가 담긴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가 청원 등록시 자동 생성되는 인터넷 주소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100명 이상의 찬성(인터넷 주소에 들어가 찬성 표시)을 받으면 국회 사무처가 청원 요건에 맞는지 심사해 해당 청원을 누리집에 공개한다. 공개된 청원은 접수 요건(30일 이내 국민 10만 명 동의)을 2월10일 충족해, 2월11일 관련 입법을 논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3월3일 청원과 관련된 법안을 논의했다. 당시 회의에서 일부 의원과 법무부는 디지털성범죄 개념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무지를 고스란히 드러내 비판받기도 했지만, 국회는 3월5일 본회의에서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과 신체 부위 등을 합성하는 기술) 처벌 규정을 담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 등은 3월9일 “청원 내용이 매우 축소되어 소극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된 데 큰 유감을 표한다”고 국회를 비판했다.

곧 추가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사이버성범죄의 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 ‘텔레그램을 통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처벌 강화 및 신상공개에 관한 청원’ 등 2건의 청원이 올라왔다. 역시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상임위에 회부됐다. 결국 국회는 4월29일 본회의를 열고 기존에 발의됐던 법에 청원 내용을 일부 반영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청와대 청원 시스템과 달라

청와대에도 청원 시스템이 있지만 실제 효력은 국민동의청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청와대 청원은 일정 기준(20만 명 이상 동의)에 도달할 경우 정부 관계자의 답변으로 처리가 끝난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에도 텔레그램 n번방 청원이 올라왔는데, 민갑룡 경찰청장이 3월24일 “엄정한 수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더는 디지털성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히 제거하겠다”고 답변하며 처리됐다. 반면 국민동의청원은 청원이 성립 요건을 갖추면 국회가 이를 상임위에 회부하고 심사할 의무를 진다. ‘n번방 법’처럼 실제 입법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본회의 의결로 채택된 것 중 정부에서 조처해야 하는 청원은 국회가 정부로 보내고, 청원자에게 처리 결과도 알려준다. 국민동의청원 누리집(petitions.assembly.go.kr·사진)에 회원 가입하면 누구나 청원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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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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