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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승부

등록 2014-06-14 13:59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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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변화도 나타났다. 부산과 대구, 전북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좀체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지역주의의 굳건한 성채가 흔들리는 징후도 엿보였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보수 성향 계층의 요새처럼 인식되던 서울 ‘강남 4구’에서도 야권 후보로 나선 박원순 시장이 새누리당의 정몽준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분명 예전의 문법과는 다른,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체 6·4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선, 대체로 무승부란 해석이 우세하다. 유권자들이 여야 모두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며 절묘한 균형을 선택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물론 충분해 보인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여권과 야권이 각기 8곳과 9곳에서 승리를 챙겼다. 야권이 승리한 광역단체가 1곳 더 많지만, 여권은 수도권 3곳 가운데 경기와 인천을 거머쥐었다. 누구도 승리했노라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에 반해 기초단체장과 교육감 선거에선 확연하게 한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새누리당은 기초단체장 117곳을 차지해 80곳 승리에 그친 새정치민주연합을 눌렀다. 반대로 교육감 선거에선 야권과 가까운 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가 13곳에서 당선돼 보수 성향 후보 당선자(4곳)를 압도했다. 보수 성향의 신문들이 벌써부터 ‘전교조의 승리’ 운운하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나선 배경이다. 역시나 한발 앞선 행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따로 있다. 선거란 게 으레 복수의 상품(후보자)을 놓고 소비자(유권자)가 선택하는 행위이다보니, 상품의 품질이 승패를 좌우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후보자 인물 됨됨이가 1차 판단 기준인 셈이다. 이번 광역단체장 선거 역시 각 정당이 내건 구체적 정책보다는 인물 승부로 치러진 쪽에 가깝다. ‘정당’은 사실상 사라지고, ‘인물’은 돋보였다. 이렇다 할 선거 대책 하나 선보이지 못한 야당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수세에 몰린 여권이 맹목적으로 기댄 ‘박근혜 마케팅’ 역시, 인물 승부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4%를 밑돌았다. 이번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진 곳이 수두룩하다. 과연 정책보다는 인물에 매달리는 선거 구도, 그것도 2~3%포인트 안팎의 근소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선거 구도가 갈수록 굳어지는 걸까? 만일 그 답이 ‘그렇다’이면 여러 각도에서 그 파장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눈여겨봐야 할 건, 이런 구도 아래선 결국 우리 정치가 누가 5% 정도의 ‘중간지대’ 유권자를 자기 편으로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축소’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야 모두 ‘크게 무리하지 않고, 엇비슷해 보이는, 평범한’ 미시 공약을 내세우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자칫 욕심을 부려 무리했다간 ‘중간지대’를 놓칠 수 있는 탓이다. 특히나 명확한 진보 성향을 내세운 강력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경험에 비춰본다면,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속성상 보수 색채를 지닌 두 거대 정당 사이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놓고 벌이는 멋진, 거대한 승부가 펼쳐지기 힘들다. 심지어 그들의 존재 자체가 혁신적 아이디어의 분출을 막는 걸림돌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사회의 역동성은 떨어질 테고.
지방선거는 끝났다. 만일 여야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고자 한다면, 낡은 정치공학적 셈법에 얽매여 눈앞의 승패를 따질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역동적이고 혁신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목소리, 전혀 다른 발상의 아이디어, 역동적인 사회운동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샘솟지 않는 사회는, 이미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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