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들 vs 표준시민
선거의 대세를 형성한 두 개의 집단…나이든 중간층 vs 뉴미디어 익숙한 시민
출구조사 결과 50대의 경이로운 투표율 이 밝혀졌다. 89.9%! 이들 중 62%가 박근혜 를 지지했고 37%만이 문재인을 지지했다.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는 자부심이 무색하 게, 40대의 44%나 박근혜를 지지했다. 50대 인구는 2002년 대선에 비해 10% 늘어난 반 면 2030세대는 10%가 줄었기 때문에 2030 세대로서는 그야말로 역부족이었다. ‘세대’ 라는 단면으로 잘라서 들여다보면 문재인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지역’이란 단면으로 보면 어떨까. 대체로 수도권에서 또렷한 강세를 보여왔던 민주통 합당의 대선 후보가 18대 대선에선 51.4%의 득표(새누리당 후보는 48.2%)에 그쳤다. 문 재인이 부산·경남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음에도 100만 표 넘는 차이로 박근혜가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서 울과 경기, 즉 수도권에서 문재인이 부진하 고 박근혜가 선전한 것이 승패에 결정적 역 할을 했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분석이 아니라 묘사에 불과하 다. 저 그림을 종합하면 새로운 정치적 대결 구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바로 ‘올드미들 (Old-middles) 대 표준시민(the Standard Citizen)’이다. 둘 다 내가 만든 개념인데, 올 드미들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를 당선시키 며 일약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집단을 가리 킨다. 글자 그대로 ‘나이 든 중간층’, 50대 이 상의 중도보수층이다. ‘미들’(중간층)이라고 이름 붙이긴 했지만 소득이나 자산에서 중 산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자신을 중산층 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을 것이다). 이 집단에는 전통적 의미의 중산층도 어느 정도 포함되고, 한편으로 저소득 노동자, 영 세자영업자들도 속해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의 가장 큰 피 해자이기도 했던 이들은 물질주의적 가치관 을 강하게 체화하고 있으며, 절차적 민주주 의를 중요시하되 문화나 인권 등의 가치에 상대적으로 비중을 덜 두는 경향이 있다. 연 령 효과로 당연히 젊은 세대에 비해서는 보 수적이지만 시대 상황에 따라 상당히 진보 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므로 딱 잘라 ‘보수 세 력’이라 하기 어렵다.
이들과 대비되는 표준시민은 ‘수도권에 주 로 거주하며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닌 중간계 급’이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란 전통적 매체뿐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 북 등 뉴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 력을 가리킨다. 대체로 올드미들에 비해 젊 고 학력도 높다. 2002년, 2004년, 2008년 으로 이어지는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이들 이 바로 표준시민의 일부였다. 또한 이들은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개 혁국민정당, 민주노동당에 직접 참여했던, 행동력과 결집력 강한 진보적 시민들이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 감’ 후보인 곽노현(서울)과 김상곤(경기)을 당선시킨 동력이기도 했다. ‘친노 세력’의 상 당수가 표준시민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다.
문제는,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감수성과 ‘친노’의 그것이 너무나 이질적이었다는 것이 다. 올드미들과 표준시민의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교집합은 안철수였다. 그러나 결국 안철수는 사퇴했다. 올드미들이 비상한 응 집력을 보이며 박근혜를 지지한 건 올해 갑 자기 ‘극우꼴통’이 돼서가 아니다. 박근혜가 던진 비전에 대한 호감이야 어느 정도 있었 겠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진 않 는다. 그에 더해, 늘 ‘자신만의 정의’로 타 정 치세력에 오만하고 무례하게 구는 ‘친노’에 대한 반감, 그리고 안철수의 사퇴에 대한 실 망까지 곱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표준시 민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올드미들은 지역 에도 고루 분산돼 있다. 두 집단의 대결이 앞 으로도 세대, 지역, 때로 계급을 갈라 치는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r>
[%%IMAGE3%%]서울은 포위당했다
근대화 향수가 부른 대구·경북의 결집…서울의 이슈가 지방과 다른 ‘서울의 게토화’
18대 대선 득표 결과를 놓고 설왕설래하 지만, 전략 실패로 보수층 결집을 초래해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연히 전략의 문제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보수층 결집이라는 현상이다.
이 상황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과거의 지역 구도가 다시 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 면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강고한 지 역감정이 이들에게 각자의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구·경 북 유권자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유 중 하나가 박근혜 후보의 집권을 ‘정권 교체’로 여기는 태도였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충분히 흥미롭다.
광주·전남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유 나 대구·경북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유 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 이었다. 대구·경북 유권자 처지에서 새누리 당은 과거의 한나라당이라기보다 박근혜 후 보의 당이었고,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후보 의 집권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 변해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특정 후보가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보기 어 렵다. 한국 정치가 뒤떨어져 있어 이런 결과 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 서 본다면, 대구·경북 유권자가 박근혜 후보 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사실에서 문제를 찾 기보다,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자신의 가치 와 동일시했다는 사실에서 문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번 대선을 과거의 지역 구도로 환원시켜서 일도양단할 수 없는 까닭이 여 기에 있다. 지역이라기보다 오히려 가치 지향 의 투표가 일어났기 때문에 보수층 결집이 가능했다는 말.
박근혜 후보라는 상징이 보여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박정희 향수라고 말하 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잘살아 보세’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근대화에 대 한 추억이다. 이 추억이 대구·경북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이 지역이 황금기 를 구가했던 무렵이 바로 박 전 대통령이 경 제개발을 추진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은 누구 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근혜 후보의 집권 을 ‘정권 교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이런 배 경에서 발생한다. 이런 정서는 대구·경북에 국한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 격차가 커질수록 서 울의 이슈가 지방의 관심사와 분리되는 현 상이 가속화해왔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이 른바 ‘서울 게토화’가 일어났던 셈이다. 그러 나 이렇게 서울을 고립시키며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해 지방의 보수층은 결집했지만, 실상 그 뭉친 세력의 안을 들여다보면 지방 이라는 서로 다른 이질성들로 꽉 차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 이질성을 비집고 들어 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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